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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10. 2024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中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위안받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음……     


’애이불비‘라는 말을 가끔 생각한다. 哀而不悲.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 한정림씨에게 지나가듯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혹시 밴드를 만들면 이름을 애이불비라고 할까 봐요. 사람들이 공일오비랑 헷갈릴까요? 중국에서 온 밴드인 줄 알까요?     


실은 모든 제작과정이 다 끝난 뒤까지,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애이불비가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서. 이 노래가 나오고 있는 동안엔 어디 숨어서 영영 안 나오고 싶었다. 그럼에도 재녹음을 포기한 건, 이미 초과된 제작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떨게 되고 말 것 같아서, 중간부터 나오는 첼로 선율이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아, 다시 막막해지고 말 것 같아서.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라는 말을 소리내어 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도 손을 못 내밀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괄호 속에 넣은 말을 속삭이며, 견딜 수 없이 떨렸다. 


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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