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中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위안받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음……
’애이불비‘라는 말을 가끔 생각한다. 哀而不悲.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 한정림씨에게 지나가듯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혹시 밴드를 만들면 이름을 애이불비라고 할까 봐요. 사람들이 공일오비랑 헷갈릴까요? 중국에서 온 밴드인 줄 알까요?
실은 모든 제작과정이 다 끝난 뒤까지,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애이불비가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서. 이 노래가 나오고 있는 동안엔 어디 숨어서 영영 안 나오고 싶었다. 그럼에도 재녹음을 포기한 건, 이미 초과된 제작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떨게 되고 말 것 같아서, 중간부터 나오는 첼로 선율이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아, 다시 막막해지고 말 것 같아서.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라는 말을 소리내어 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도 손을 못 내밀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괄호 속에 넣은 말을 속삭이며, 견딜 수 없이 떨렸다.
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全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