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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Dec 03. 2024

거울 저편의 겨울 12

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거울 저편의 겨울 12

―여름 천변, 서울     


저녁에

우는 새를 보았어.  

  

어스름에 젖은 나무 벤치에서 울고 있더군.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아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도

날아가지 않아서,     


내가 허깨비가 되었을까

문득 생각했어   

  

무엇도 해칠 수 없는 혼령

같은 게 마침내 된 걸까, 하고     


그래서 말해보았지, 저녁에

우는 새에게     


스물네 시간을 느슨히 접어

돌아온 나의

비밀을, (차갑게)

피 흘리는 정적을, 얼음이

덜 녹은 목구멍으로   

  

내 눈을 보지 않고 우는 새에게   


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겨울의 언어
작가 한강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와 소설로 아울러 등단(1993·1994년)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한 때가 불과 스물다섯 나이인 1995년이었다. 첫 책에 수록된 단편들 대개가 어둡다.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한 작가는 ‘젊은 작가가 왜 그리 슬픈 이야기만 쓰냐’는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슬픈 게 좋지 않아요?”.      

시로 등단한 지 20년 만인 2013년 내놓은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속 12편의 연작시 ‘거울 저편의 겨울’의 지배적 정서다. 인간 사회, 인류 보편의 ‘추위’에 휩싸인 곡진한 공감.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특히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어떤 소설도 아래 시들의 감성을 지울 수 없다.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거울 저편의 겨울’ 부분)

그로부터 20년 전인 대학 4학년(연세대 국어국문과) 때 학보에 쓴 시를 외어본다.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편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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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한강의 언어들, 
어디서 헤엄쳐 왔나
임인택, 구둘래, 최재봉기자
2024-10-11 <한겨레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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