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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추억

2000년의 부엌

by 김양훈


2000년 매미울음도 지쳐가던 늦은 여름부터였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집에서도 실습을 거듭해야 했다. 부엌 출입을 허가하면서 그녀는 정신교육부터 시켰다. 부엌일 시작 전 나를 세워놓고 그녀는 몇 날을 되풀이해서 부엌일을 함에 중요하고 조심할 일을 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간현유격장에서 맞닥뜨렸던 조교가 생각났다. 이등병 졸병 때였다. 훈련병이 실수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와 ”너는 죽은 목숨이야“라고 외치며 엄한 기합을 주었다. 그런데도 훈련병 한 명이 수평이동 로프를 타다가 잘못 떨어져 우리 눈앞에서 사망했다.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설거지!


무엇을 가장 조심해야 합니까?

뜨거운 것과 날카로운 것!


큰 사고는 없었지만, 손데이고 식칼에 찔리는 자잘한 안전사고는 여러 번 있었다. 잔소리가 무서워 숨길 수 있을 데까지는 숨겼다. 다만 그릇 깨는 난동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그 엄청난 소리를 숨길 수 있나.


마뜩하지 않으면서도 시장보기를 함께해 주었던 그녀가 무엇보다 고마웠다. 물론 실습 후 맛보기 보상은 있었지만 말이다. 현장에서 발표하는 실기시험 과제는 서너 가지뿐이었지만, 시험에 대비해야 할 조리실습은 수십 가지가 넘었다.


그녀는 모르지만, 나는 그때 그 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총 60문제를 60분 동안 풀어서 60점 이상 맞추는 필기시험은 쉽게 합격했다. 기출문제집을 한두 번 훑어보면 되는 거였다.


난관은 실기시험이었다. 작업형 조리시험으로 7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조리 작업을 완료하여 60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시험관들은 수험장을 돌며 매의 눈으로 수험생들의 작업 모습을 관찰했다. 마침종이 울리고, 그들은 시간 내 제출한 완성품을 앞에 두고 관찰 결과와 종합해 점수를 매겼다.

남정네는 몇 안 되고 젊은 처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요리학원이었다. 첫 시험 치고 단박에 붙었다고 작은 소동이 있었다.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합격자도 소수였다.


오십 가까이 나이깨나 든 남정네가 허연 가운에 길쭉한 요리캡을 쓴 채 이것저것 도마에 올려놓고 서툴게 애쓰는 모습. 동정 점수가 없을 리 없었을 것이다.


자랑할 게 워낙 없으니 한식 조리사 자격증 소유자라고 떠벌릴 때가 있다. 지난번 벙개 독서모임 뒤풀이 때가 그랬다. 아차 싶었지만 물은 엎질러졌다. 뜨거운 것과 날카로운 것을 조심하라는 그녀의 경고 말씀이 생각났다. 그날 저녁의 입방정을 설거지할 겸해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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