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분신』中
한때는 주인공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5등 문관 베렌제예프의 고명딸 끌라라 올스피예브나의 생일 파티에서 쫓겨난 주인공 골랴드낀의 처지를 가로등에 빗대어 묘사하는 대목이다. 우리 주인공을 괴롭히는 그의 분신(分身)인 ‘작은 골랴드낀’은 괴롭고 음울했던 이 날 밤이 지나 그의 앞에 나타난다.
『분신』읽기를 중단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 도스토옙스키를 읽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읽어내기에는 끔찍하게 지루했던 도스토옙스키의 중편이었다.
[책 속에 숨은 한마디]
가로등
끔찍한 밤이었다. 안개 때문에 희뿌연 11월의 눅눅한 밤, 진눈깨비는 내리고 염증, 코감기, 열병, 편도선염, 고열 등 온갖 증상으로 가득한, 한마디로 말해서 페테르부르크시의 11월이 줄 수 있는 선물은 모두 모아 놓은 밤이었다. 바람은 폰탄카 강의 시커먼 물을 보도 난간의 연결 고리보다도 더 높이 솟구치게 했고, 흐릿한 강둑 가로등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리며 텅 빈 거리에서 울부짖었다.
가로등은 가로등대로 바람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가느다랗고 날카롭게 삐걱삐걱 응수하고 있었다. 이 소리는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주민에게 아주 익숙한 연주회 같은 것으로 끊임없이 삑삑거리고 덜그럭거렸다.
눈과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바람이 흩뿌리는 빗줄기들은 마치 소방호스로 옆에서 물을 뿌려 대는 것 같았고, 수천 개의 옷핀과 머리핀이 되어 불행한 골랴드낀 씨의 얼굴을 찌르고 때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 바퀴 소리와 바람의 울부짖음, 그리고 삑삑거리는 가로등만이 가끔 밤의 정적을 끊어 놓았는데, 지붕과 현관 계단과 배수관과 처마에서 화강암 보도로 떨어져 흐르는 물소리는 그 정적의 한복판에서 우울하게 울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런 시간 그런 날씨엔 사람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오직 한 사람, 절망 속에서 거리로 내몰린 골랴드낀 씨만이 셰스찌라보치나야 거리에 있는 건물 4층의 자기 아파트로 될 수 있는 한 빨리 서둘러 가려고 이런 시간에 폰탄카 거리를 평소 습관처럼 종종걸음으로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분신』中 (251-252쪽)
[옮긴이 註]
1) 폰탄카강(Фонтанка)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흐르는 네바강의 지류이다. 폰탄카강의 둑은 러시아 귀족의 사유지를 지나고 있다. 폰탄카강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흐르는 93개의 강과 수로 가운데 하나다. 이 강은 "베지먀니 지류"(Безымянный ерик)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