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음악가 홍난파는 1920년대 초반 최대의 전문 번역가였다. 문학청년의 출현과 번역 출판의 전성기를 예고한 홍난파는 1919~1924년에 세계 문학의 번역에 열중했다. 홍난파의 번역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작품은 홍난파의 첫 번째 번역이자 식민지 시기에 유일하게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홍난파는 청춘의 열애와 비련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 문학을 번역한 동시에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1920년대 전반 최대의 번역가로 손꼽히는 난파 홍영후. 국내 첫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면서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는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폴란드 출신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까지 번역했다.
"음악이나 잘하라"
친구 변영로 핀잔에 충격
“너는 음악이나 하면 했지, 주저넘게 소설은 다 무엇이야, 그래 개천지(開天地) 통만고(通萬古)해서 두가지 예술에 대성한 천재가 누구란 말이냐?”
스물 대여섯살 난파(蘭坡) 홍영후(1898~1941)가 설날 무렵 문인들과 술자리에 어울렸다가 얼굴에 찬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수모를 당했다. 권커니 잣거니 순배가 돌다가 취기가 오른 끝에 동갑내기 친구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가 핏대를 올리며 도발한 것이다.
불의의 습격에 허를 찔린 난파가 반론을 폈다. “왜 없니? 바그너도 모르니? 시인이요, 음악가인 바그너 말이다.” 수주가 질 리 없었다. “장하다! 그래 네가 그런 불세출의 대천재란 말이지?” -아래 조선일보 기사 中.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조선일보 기사와 논문을 참조하세요.
홍난파가 번역한 '청춘의 사랑' (신명서림, 1923). 도스토옙스키 등단작 '가난한 사람들'을 번역했다. 물론 일본어 책을 중역한 것이다. 일제시대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 유일하게 출판된 작품이다.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