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하로부터의 수기(I)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by 김양훈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

주제로 읽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I)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해 왔다. 그동안 인간을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주로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측면에서 해답을 찾아 왔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당대의 과학자 지식수준에 따라 변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을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동물로 간주해 왔다. 인간이 합리적 동물이라는 통상적인 대답은 사고하고 계산하는 인간 능력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대답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일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중편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오늘날 도스토옙스키는 새로운 사유의 모델로 부활하고 있다. 그는 ‘21세기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작가’가 틀림없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대의 사상적 도약을 마련한 소설가로서 21세기에도 사유의 다양한 주제들 속에 계속 살아 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앙드레 지드

열쇠가 되는 작품

1864년에 발표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1821~1861)의 모든 작품을 놓고 볼 때 분기점이 된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기준으로 그의 활동 시기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기를 ‘좋은 도스토옙스키’로, 후기를 ‘나쁜 도스토옙스키’로 평했으나 이는 그들의 예술이론에 따른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가리켜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 했고, 로자노프와 니체는 이 소설을 읽고서 프란츠 오베르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난 어떤 책방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보았다. 그것은 내가 21살 때 스탕달을 발견했던 것과 똑같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나는 당장 혈연의 본능을 자극하는 소리를 듣고, 나의 가슴은 환희로 벅찼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역시 자신의 실존철학은 이성의 횡포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비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도스토옙스키의 철학적 세계관을 확실하게 정립하여 보여 주는 가장 독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나보코프의 말대로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주제와 형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최고의 그림이자 도스토옙스키적인 것의 결집체이다.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서구합리주의와 권력의 성에 갇혀 있다. 서구합리주의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힘과 권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상 속 이성의 권력 구조를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이성의 폭력을 다시 한번 새롭게 사유하고 재해석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하로부터의 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