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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소냐에게 고백했을까?

6월 독서과제 <죄와 벌>, ChatGPT와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by 김양훈
“…자, 내 애긴 이게 다야. 하지만 조심해. 내가 감옥에 가면 면회 와 주겠어?“

”네, 그럼요! 그럼요!“

두 사람은 폭풍이 지나간 텅 빈 바닷가에 단둘이 내던져진 사람들처럼 슬프고 기진맥진해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는 소냐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많이 그를 감싸고 있는지 느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갑자기 괴롭고 가슴 아프게 여겨졌다. 그렇다. 그것은 이상하고 무서운 느낌이었다! 소냐에게 오면서 그는 자신의 모든 희망과 모든 출구가 그녀에게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지금 그녀의 마음이 온통 그에게로 향하자, 문득 자신이 전보다 한없이 불행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의식하게 되었다. ”소냐.“ 그가 말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찾아오지 않는 게 좋겠어.“

소냐는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몇 분이 지나갔다. p253 김희숙 번역 <을유문화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살인을 고백하는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다. 이 고백은 단순한 플롯의 전개가 아니라,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 변화, 죄의식, 인간성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라스콜니코프는 왜 하필 소냐에게 고백했을까?

소냐는 고통과 사랑을 함께 아는 인물이기 때문

소냐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신앙과 사랑을 버리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몸을 팔고 있지만, 인간적인 연민과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에게서 무조건적인 수용과 용서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자기 죄를 이해해줄 유일한 존재

라스콜니코프는 이론적으로 살인을 정당화했지만, 내면에서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을 심판하거나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고통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고백하고자 한다. 소냐는 그러한 ‘도덕적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백을 통한 구원과 회개의 시작

소냐는 라스콜니코프에게 신앙과 회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성경에서 ‘라자로의 부활’ 이야기를 읽어주며, 라스콜니코프에게도 부활과 재생의 길이 있음을 암시한다. → 소냐에게 고백하는 것은 단지 죄를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첫 걸음을 내딛는 행위이다.


이 고백의 의미

심리적 측면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심리적 해방 욕구


도덕적 측면

이론으로 정당화하던 살인이 실제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음을 인정하는 자기 부정


영적 측면

신 앞에서, 인간 앞에서 참회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회개의 출발점


요약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살인을 고백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 욕망, 자기 이론의 허구를 인정하는 도덕적 각성, 그리고 사랑과 신앙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영적 갈망을 표현한다. 소냐는 그의 죄를 단죄하지 않고 함께 고통을 짊어지는 ‘사랑의 증인’이며, 이 고백은 결국 그가 인간으로서 회복되는 시작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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