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체호프의 독서과제 추천 : 단편소설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희곡은 『갈매기』-함영준 교수의 「체호프 특강」에서
나는 나쁜 여자예요,
비열하고 천박해요….
나 자신을 경멸해요.
내 인생은 엉망이 됐어요.
김나지움에 딸을 데려다주고 구로프는 호텔 ‘슬라브 시장’으로 향했다. 아래층에서 코트를 벗고,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그가 좋아하는 잿빛 원피스를 입은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여행과 기다림으로 지쳐 보였다. 어제저녁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창백했고 그를 보고도 미소 짓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연인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마치 2년은 만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의 입맞춤은 길고도 길었다.
“어떻게 지내?”
그가 물었다.
“뭐 새로운 일은 없고?”
“잠깐만요, 지금 이야기할게요…. 아, 못 하겠어.”
그녀는 우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몸을 돌려 손수건을 눈가에 갖다 대었다.
‘그래, 좀 울라고 하지. 그동안 난 여기 앉아 있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벨을 울려 차를 주문했다. 구로프가 차를 마시는 내내 그녀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삶이 이토록 슬프게 흘러버렸다는 서글픈 깨달음과 흥분으로 울었다. 그들은 비밀스레 만 만날 수 있고, 마치 도둑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이제 그만하지!”그가 말했다.
그는 이 사랑이 곧 끝나지 않을 것이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음을 확신했다.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점점 더 많이 그에게 의존했으며, 그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 모든 일이 언젠가 끝날 거라고 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아마 그녀는 그 말을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어루만지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미 세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자신이 이렇게 늙고 추해져 버린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의 손이 놓인 따스한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 인생, 아직 이렇게 따스하고 아름답지만, 그의 삶처럼 이미 퇴색하고 시들기 시작하는 시점에 더 가까운 이 인생에 연민을 느꼈다. 도대체 그녀는 왜 이토록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여자들은 항상 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않았고, 그에게서 그 자신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사람, 삶 속에서 그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사랑했다. 그중 단 한 여인도 그와 있어 행복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며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졌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뭐라 불러도 좋지만, 그건 절대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머리가 세기 시작하는 지금에야 그는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짜 사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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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안지영 옮김) (4) 中
그간 체호프의 작품을 채우던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구로프와 안나 세르게예브나, 그들이 이전의 주인공들과 같이 경박함, 무능함으로 시작한 불륜은 반평생을 질기게 이어지며 드디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세계의 문 앞에 선다. 평자들의 지적처럼 체호프 자신이 결혼이라는 금단의 경계를 넘게 했던 올가 크니페르와의 사랑이 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체호프는 죽기 얼마 전에 이르러서야 이미 귓가에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한 늙은 연인들을 통해 드디어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발표되었을 때, 비평가들뿐 아니라 독자들도 이 작품에 그려진 ‘불륜의 사랑’의 사실성에 가장 열렬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구로프’와 ‘안나 세르게예브나’들의 경박한 연애가 진정한 사랑으로 전화해 가는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물론 그 여파로 지금 보기엔 우스운 반응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체호프와 알고 지내던 수많은 여인들이 자기야말로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주장하며 나섰고, 얄타에는 하얀 스피츠를 데리고 몽롱한 눈빛으로 해변을 쏘다니는 여인들의 수가 급증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또 과연 구로프와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그들을 둘러싼 한계들을 털어버리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애타하며 작품의 후속편을 써달라는 여성 독자들의 요청도 빗발쳤다고 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은 고리키는 1900년 1월 체호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당신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리얼리즘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은 그것을 곧, 그리고 완전히, 아주 오랫동안 끝장내게 될 겁니다. 이 형식이 자신의 시대를 다 살았다는 것은 이미 사실이니까요. 이 길을 따라서는 누구도 당신보다 더 멀리 갈 수 없을 겁니다. 누구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들에 대하여 그토록 단순하게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작품이 발표되자 수많은 호평이 쏟아졌지만, 톨스토이만은 이 작품에 분노했다고 한다. 그는 선과 악의 구분도 모른 채 그것을 뛰어넘은 척하며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분노하며 이런 작품을 쓴 체호프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체호프가 그린 것이 ‘불륜’의 사랑이기보다는 사랑할 줄 모르던 인간이 반드시 자신의 경계를 넘어야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톨스토이의 도덕적 분노가 지나치게 작품의 일면에만 집중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체호프는 읽을수록 새로운 작가이자, 놀랄 만큼 현대적인 작가이다. 긴카스[1]가 남긴 『로실드의 바이올린』[2]공연 연습 기록에는 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연출가의 경의가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국, 체호프가 또 우리를 이길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할 뿐이다”.
분명 체호프는 항상 우리를 이길 것이다, 낙관주의나 비관주의, 냉소주의나 삶의 지혜로운 교훈으로 그의 작품을 단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언제 읽어도 우리보다 더 현대적인 체호프가 항상 우리를 이길 것이다. 우리는 그저 삶의 주어진 순간에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체호프 세계의 한 단면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공감하며 감동할 뿐이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우리를 이기는 작가라는 사실이야말로 체호프를 읽는 가장 큰 기쁨이다. (옮긴이 안지영의 작품 해설 中)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앞에 이제 가장 복잡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옮긴이 註]
1. 카마 미로노비치 긴카스(Ginkas)는 특히 안톤 체홉,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산문을 극적으로 각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며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러시아와 전 세계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2. 로실드의 바이올린 "(Скрипка Ротшильда , 로마자 : Skripka Rotshilda – "로스차일드 바이올린"으로도 번역됨)은 안톤 체호프가 189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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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요약: 야코프는 관을 짜는 노인으로, 돈을 밝히고 주변 사람들을 냉대하며 살아왔다. 그의 아내는 병들어 죽어가지만, 야코프는 아내의 죽음보다 돈벌이에 더 관심을 갖는다. 아내의 장례식 날, 그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며 자신의 삶이 공허했음을 깨닫는다. 특히, 유대인 악사 로실드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감동받아, 자신의 바이올린을 로실드에게 남긴다. 로실드는 이후 야코프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그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