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II)

석영중 著 <인간 만세!> 중 발췌-돈, 치정, 살인: 궁극의 ‘갑질’

by 김양훈


러시아 문학 독서회
8월 과제독서 복습

앞서 간추린 줄거리만 흘깃 보더라도 독자는『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된 소재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돈이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돈 3,000루블, 장남이 훔쳐 갔다고 여겨지는 돈, 한 여성의 사랑을 얻는 데 필요한 돈, 사실 이 3,000루블이란 액수의 돈은 너무나 유표해서¹⁾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번역본으로 1,700쪽에 달하는 소설에서 3,000루블은 약 200번 정도 언급된다(물론 다른 액수의 돈도 수백 번 언급된다). 돈, 특히 3,000루블은 플롯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 중의 하나다. 인물들은 돈에 의해 엮이고 돈을 위해 양심을 팔고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돈 덕분에 구원을 받는다.

구르센카(Grushenka)
치정(癡情)

두 번째 소재는 치정이다. 소설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애정이 나타난다. 거의 사랑 백화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명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 육체만의 사랑, 병적인 사랑, 장난삼아서 하는 육체관계, 추잡한 욕정, 매매춘 등등 온갖 유형의 사랑과 애욕의 형태가 다 등장한다. 이 모든 치정 관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하면서 동시에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한 타락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애정 경합이다.

살인

세 번째 소재는 살인이다. 도스토옙스키의 거의 모든 소설에는 살인 사건이 들어 있다. 『죄와 벌』에서도, 『백치』에서도, 『악령』에서도 소설의 축이 되는 것은 끔찍한 살인 사건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도 표도르의 피살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적 요소 중의 하나다. 살인 사건은 길고 심오한 소설에 스릴과 서스펜스를 더해 주는 동시에 선악의 문제를 파헤치는 데 단초를 제공한다.

돈, 치정(癡情), 살인: 궁극의 ‘갑질’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스토옙스키는 왜 그토록 돈, 치정, 살인이라고 하는 ‘3종 세트’에 집착한 것일까? 돈, 치정, 살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냥 재미있게 써서 책을 팔아먹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사실 돈, 치정, 살인을 소재로 하는 소설치고 지루한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돈, 치정, 살인은 단순히 흥미를 위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읽기의 천재가 발견한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삶’의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노골적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야비한 조건이다.


성은 생명의 원천이다. 성이 있으므로 해서 인간종(種)의 존속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욕정을 비롯한 광의의 성애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구성한다. 성이 생명의 원천이라면 돈은 그 원천의 지속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단이다. 돈,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는 생존의 본질적인 조건이다. 이 두 가지는 또한 어느 단계 이후에는 인간의 ‘권력에의 욕구’와 직결된다. 물론 이때 돈은 단순히 화폐가 아니라 부와 지위와 명예와 권력의 환유²⁾다.


돈에 대한 욕구와 성에 대한 욕구는 그 근저에 지배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깔고 있다. 돈과 성은 지배하고 착취하고 소유하고 정복하고 학대하는 욕구의 매개물이다. 요즘 식의 표현을 써서 말하자면 돈과 성은 ‘갑질’의 핵심이다. 인간이 그토록 부와 지위를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풍족한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타인을 부리고 지배하기 위해서, 즉 갑질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성도 마찬가지다. 성애는 한순간 성폭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 성폭력이란 성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갑질이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돈과 성은 갑질의 형태로 드러난다.


살인은 갑질의 가장 사악한 결과이다. 인간의 지배하고 소유하고 학대하고자 하는 욕구가 극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살인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생명을 억누르고 짓밟고 학대하는 최악의 행위는 그 생명을 빼앗아 버리는 일 아니겠는가. 부외 권력으로도, 성적 학대로도 지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살인은 최종적인 선택지가 된다. 성폭력이 종종 살인과 연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 치정, 살인은 인간의 지배욕을 가장 뚜렷하게 대변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돈과 성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생존 본능의 충족만이 삶의 목표인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과 접경한다. 살인은 지옥을 지시하는 기호이다. (2024년 6월 5일 페북 구룹방 '러시아 문학 읽기'에 올린 글)


<(III) 구원, 지금 이곳의 문제>에서 계속


[옮긴이 註]

1) 유표(有表)하다 : 여럿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2) 환유(換喩)는 수사학의 기법 가운데 하나로, 개념의 인접 또는 근접에 따라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용하는 비유의 일종이다. 간추리자면 하나의 부분을 그 전체와 연결을 하여 그 전체를 얘기하고 싶을 때 그 부분만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제유법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사용되는 단어 자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월 스트리트는 뉴욕의 거리지만, 경제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여의도=한국 정치) -위키백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알료샤 카라마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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