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타 사다요시 외 『러시아의 문학과 혁명』에서
러시아 문학 독서회
8월 과제독서 복습
무대는 1860년대 러시아 벽촌, 물욕과 음욕의 화신 표도르 카라마조프에게는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사생아가 있다. 거칠 것 없는 생명력과 고결한 감성의 소유자인 장남 드미트리, 회의적이면서도 예리한 정신을 가진 차남 이반, 조시마 장로를 사모하며 경건한 신앙을 가진 명랑 쾌활한 청년 삼남 알료사, 그리고 카라마조프 집안에 요리 담당으로 일하는 스메르자코프가 그들이다. 어느 날 삼형제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드미트리는 어느 늙은 상인의 첩으로 아버지가 흠모해 마지않는 그루센카를 알고 나서는 아버지와 연적이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반은 어느 날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메르자코프에게 ‘아버지를 죽일 것’을 암시한 채 모스크바로 떠난다.
이렇게 해서 카라마조프 집안의 주인이 살해되고 체포당한 드미트리는 20년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보내진다. 간질을 가장해서 교묘하게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 스메르자코프는 목을 매 자살하고 이반은 미쳐버린다.
삼형제의 개성이 매력적인『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평생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무엇보다도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주인공 삼형제의 개성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장남 드미트리는 자유분방하고 탈상식적인 개성을 앞세워 실로 카라마조프적인 혈통을 체현(體現)하는 인물인데, 또한 그는 성녀 마돈나의 이상과 정욕의 상징인 소돔의 이상으로 갈라진 분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분열은 이야기의 종반에서 희열로 가득한 자기희생으로 승화된다.
차남 이반은 서유럽적 이상에 매료된 니힐리스트¹⁾ 청년이며 그의 내적 분열은 비극 그 자체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남김없이 나타낸 것이 제5편「찬성과 반대」다. 이반에 따르자면 이 세상에 충만한 것은 불합리, 악, 고통이다. 죄 없는 아이들의 피와 눈물 위에 만들어진 영원히 조화로운 사상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이반은 자기가 쓴 극시『대심문관』에서 ‘신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기독교의 근본 명제에 예리한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에게는 본래 스스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할 만한 힘도 없다.” 극시 속의 대심문관은 이렇게 호언장담하며 기적, 신비, 교권을 사용하여 인간을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옹호하고 그리스도를 단죄한다. 여기에는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가톨릭 비판, 그리고 동시대 혁명사상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은밀한 비판이 엿보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내적 분열자인 이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수긍하면서도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신앙과 사랑을 향한 갈망을 누를 수는 없었다. 셋째 알료사는 이러한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작가의 죽음으로 미완성인 채 끝난 제2부는 바로 알료사가 수도원을 나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갖가지 고뇌를 걸친 끝에 갱생의 길로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를 보건대 만년의 도스토옙스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한 영혼의 구원이라고 하는 이상에 철저하게 충실했었다.
왜 부친 살해인가?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중심에 ‘부친 살해’라는 주제를 설정했다. 그가 좀처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던 자신의 과거 사실²⁾에 대해 새삼 다시 물어보려고 한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과거가 있는 옴스크 감옥 시절의 동료 일리인스키 소위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직접적인 소재가 되긴 했으나 물론 여기에는 작가 자신의 내면적 드라마도 짙게 반영되었다.
그렇다면 왜 아비 죽이기인가? 이 문제를 짚어 볼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인물이 바로 카라마조프 집안의 요리 담당이며 부친 살해 사건의 하수인이었던 스메르자코프다.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라고 하는 이반의 교사(敎唆) 아버지 죽이기가 결행되는데. 이때 이반, 스메르자코프, 아버지 표도르가 이루는 삼각형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도스토옙스키는 분리파의 한 분파인 거세파³⁾의 일원 역할을 스메르자코프에게 떠안겼다. 이 거세파란 성적 쾌락의 금기를 매개로 연결된 집단이다. 따라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음탕한 사나이 표도르를 살해한다는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진심 어린 고백이라는 사실에 주의하자. 또한 스메르자코프(Смержаков)라는 이름이 ‘농노(Смерд/스메르드)⁴⁾’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의 중심에 아비 죽이기를 위치시킨 의미가 어렴풋하게나마 눈에 잡힌다. 이반의 교사에 따른 아버지 살해라는 구도는 18세의 도스토옙스키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면서 경험했던 어떤 존재론적인 드라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후 그의 상상력의 근원에 언제나 숨 쉬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자신의 내적인 ‘아비 죽이기’라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으며, 도스토옙스키가 고민했던 모든 문제는 바로 이곳을 원점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옮긴이 註]
1) 허무주의(虛無主義) 또는 니힐리즘(Nihilism)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nihill('허무'의 라틴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철학적 견해이다.
우주와 인생의 진상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은 노자(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자각적인 사상으로서의 본래의 니힐리즘은 19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현대에 걸친 서구 사회의 특유한 사상이다. 곧 근대의 격변기에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가치 체계가 붕괴하고 그 후에 올 장래의 가치에 대해 전망할 수 없는 역사의 위기적 전환기에 있어서 소시민층의 세계관 반영으로서 성립한 것이다.
시민 사회를 역사적 진보의 완성으로 성화(聖化)시키는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 철학은 그리스적 지성과 유대적 신앙의 대담한 절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강제적인 결혼은 중매자인 헤겔의 죽음과 함께 파탄을 일으켰다. 합리적·실증적 정신의 발달에 의해 그때까지 가치 목적을 한몸에 집중시키고 있던 신에의 신앙이 상실되었을 때, 그 후에 남겨진 적나라한 자연의 실상(實相)은 가치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는 허무(니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무한한 불안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 철학에 반발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나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사상에 근대시민들의 생을 잠식하고 있는 허무한 기분이 짙게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또 헤겔 좌파의 맹장 포이어바흐의 무신론(無神論)을 철저히 밀고 나가 강렬한 에고이즘의 입장을 세운 독일의 '자유파(自由派)' 사상가 슈티르너의 자리를 무(無) 위에 놓음으로써 자기 이외의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려는 무정부주의적 니힐리즘 철학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허무주의적인 시대 풍조는 드디어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1)의 청년 주인공 바자로프에 의해 니힐리스트라는 하나의 인간상으로까지 결정(結晶)되었다. 철저한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에서 일체의 기성 질서나 가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 자유주의를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스트'라고 명명한 이래로 니힐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신인(神人) 예수에 대한 소박한 신앙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신(人神)의 입장에서 서려고 하는 니힐리스트들의 삶은, 도스토옙스키의 영필(靈筆)에 의해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무서운 인격분열의 절망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사조로서의 니힐리즘의 저류를 철저히 적발하여 이를 명확한 하나의 사상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니체로서, 니체는 강한 정신을 가진 자가 약한 정신을 가진 자를 지배하고 고귀한 자가 비소(卑小)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본래의 가치 체계라고 하는 힘에의 의지설의 입장에서 니힐리즘을 분석하여 '수동적(受動的) 니힐리즘'과 '능동적(能動的) 니힐리즘'의 두 유형을 발견한다.
'수동적 니힐리즘'은 약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쇠퇴하고 허무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회피하고 찰나적인 향락주의나 무관심한 이기주의 등 퇴폐적 삶에 의해 공허감을 채워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니힐리즘은 잠재적인 형태로 예감될 뿐이며 그 참된 극복은 무한히 연기된다. 이에 대해 소모적인 현실 도피의 삶을 거부하고 니힐의 병근(病根) 한가운데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허무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것이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이러한 능동적 니힐리즘의 입장에서 모든 현존하는 가치나 질서가 뽐내는 절대적 권위를 파괴해 갈 때,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자유로이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튼다. 우상(偶像)의 가면을 벗기는 이기(利器)로서 무(無)를 내세움으로써 무를 단순한 생의 소모원리(消耗原理)로부터 생의 적극적인 창조 원리로 전환시켜 나가는 '능동적 니힐리즘'이야말로 니힐리즘의 지배 밑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당연한 생활 방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확실히 근대 합리주의의 문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를 일으켜서 잠재적인 니힐리즘을 준비하고 있다. 니힐리즘은 이 잠재적 니힐리즘과 성실하게 대결하여 거기에 숨어 있는 우상 숭배적인 태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진실한 가치의 탄생을 이룩하려고 한다. 물론 니힐리즘 자체는 환영할 만한 손님은 못되지만 적어도 현실 도피적인 무관심주의나 찰나적인 향락주의보다는 훨씬 진지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의 소산인 것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자만이 우상 숭배적인 삶의 허망함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허무를 어우르고 허무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허무를 허무로써 직시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역설한 것처럼 현실의 삶이 허무에 잠식되고 있을 때, 이러한 삶에 대해 절망하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구원할 수 없는 중증(重症)의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힐리즘은 거기에 안주할 서식처는 아니지만, 진실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할 현대인의 필수적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전체적 목표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온갖 부분적 수단의 본말관계(本末關係)를 전도하는 것이 잠재적 니힐리즘의 참된 원인이다. 이러한 가치전도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생의 철학'이다. 생의 철학에서는 인생을 위한 합리(合理)이지, 합리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생의 철학 주장을 한 걸음 더 진전시켜, 허무한 현실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으로 허무의 심연을 초극하려는 것이 실존주의이다. <위키백과>
2) 그의 나이 18세 때 난폭한 지주였던 아버지가 농노에게 참살당했다.
3) 분리파와 거세파
■분리파(라스콜리니키/Раскольники)는 17세기 중반 러시아 정교회에서 실시된 전례 개혁 때 이를 거부하고 교회에서 독립한 각파를 총칭한다. ‘구교도’, ‘복고신앙파’라고도 한다. 황제 알렉세이(재위 1645~1676)의 신임을 얻은 총주교 니콘에 의한 전례 개혁은 신앙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여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했음을 감지한 성직자나 신자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고 분리파를 형성했다. 이것을 교회 분열(라스콜/Раскол)이라고 한다. 지도자 중 한 명인 이바쿰은 두 번이나 추방당했다가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 이후 분리파는 사회 각 층에 폭넓게 침투했다. 채찍으로 스스로를 내리쳐 신과의 일체를 꾀하는 편신파, 성적 쾌락을 금기시하는 거세파 등 수많은 광신적 파벌을 낳았다. 도스토옙스키는『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주로 대작 속에 이에 대한 테마를 나타냈다.
■거세파-러시아 제국에서 성행한 이단이자 신흥종교인 스콥치(scoptzy/Ско́пцы)는 러시아 제국에서 성행한 신흥종교였다. 한국어로 <거세파>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선악과(善惡果)가 남성의 음부에 달라붙어서 음낭과 고환이, 여성의 가슴에 달라붙어서 유방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거세 또는 유방 절제술을 받아야 천사가 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정부의 탄압을 받아 소멸하였다.
4) "스메르드(Смерд)"는 고대 러시아어로, 러시아 제국 시대에 사용되었던 용어다. 이 용어는 주로 농촌 지역의 소유 없는 농민을 가리켰다. 이들은 일정한 비용을 지급하고 주택과 토지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소작주나 군인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Смерд"는 주로 농촌 사회의 최하위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현대 러시아어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주로 역사적인 맥락에서만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