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극사에서 안톤 체호프의 위치와 의미
러시아 문학사는 소설과 서사시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지만, 희곡 또한 독자적 맥락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19세기 중반까지 러시아 연극 무대는 주로 멜로드라마, 전통 희극, 외국 작품 번안극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가 등장하면서 러시아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적 희곡이 무대에 올랐다. 오스트로프스키는 상인 계급과 관료 사회의 부패, 가족 내 권력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러시아 희곡을 근대적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작품은 연극이 사회적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인물 구도와 갈등 전개는 전통적 드라마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안톤 체호프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연극사 속에서 혁명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인물의 내면과 삶의 공허함, 언어의 단절을 드러내므로서 희곡을 크게 변회시켰다. 1896년 초연 당시 외면을 받았던 《갈매기》(1896)는 이후 스타니슬랍스키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무대를 거치면서 체호프 희곡의 진가를 드러냈다.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 동산》(1904)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들은 러시아 희곡을 세계 연극사의 중심 무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호프의 희곡은 무엇보다 '플롯의 부재’라 불릴 정도로 전통적 기승전결 구조를 거부한다. 갈등은 격렬한 외적 충돌로 폭발하지 않고, 무심한 대화와 사소한 일상적 행위 속에 스며든다.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의미 없는 수다와 침묵이 교차한다. 이는 단순히 리얼리즘의 재현이 아니라, 근대인의 소외와 단절, 무력감을 무대 위에 구현한 것이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종종 더 나은 삶, 행복,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의지를 끊임없이 무력화시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체호프 희곡은 사회적 현실의 반영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탐구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체호프 이전의 러시아 희곡이 사회 계급의 모순이나 제도적 병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성격을 띠었다면, 체호프는 ‘부재의 드라마’, 즉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긴장과 암시의 언어를 통해 관객을 사유의 장으로 초대했다. 이러한 시도는 연극의 미학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스타니슬랍스키가 내건 ‘내적 행위’ 중심의 연기론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체호프가 묘사한 대사의 여백, 무대에서의 침묵은 배우가 인물의 심리적 층위를 내면적으로 탐구하게끔 만들었고, 이는 현대 연기술의 초석으로 작용했다.
체호프 이후 러시아 희곡은 두 갈래로 전개되었다. 한쪽은 그의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혁명 이후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결합하여 집단적 이념을 구현하려는 방향이었다. 트레티아코프나 아르부조프 같은 소비에트 작가들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무대에 올리려 했지만, 체호프 희곡이 갖는 휴매니즘의 깊이에 비하면 그 표현 대상이 상대적으로 매우 좁은 영역에 머물렀다.
한편 세계 연극사의 관점에서 보면 체호프는 입센과 더불어 근대 희곡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된다. 입센이 사회 제도의 모순과 개인의 선택을 날카롭게 묘사했다면, 체호프는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좌절을 표현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러시아 희곡은 민족문학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체호프는 러시아 희곡의 흐름을 사회적 사실주의에서 심리적·철학적 사실주의로 전환시킨 작가였다. 그의 작품들은 극적 사건의 부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연을 포착함으로써, 연극을 사유와 감수성을 보여주는 무대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러시아 문학사의 성취를 넘어, 20세기 연극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환점이었다. 따라서 체호프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희곡의 역사는 곧 인간 존재의 무의미와 희망, 소외와 갈망을 탐구하는 근대 연극의 탄생사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오스트로프스키 (1823~1886)는 연극에 전념한 러시아 최초의 전문 극작가로 러시아의 국민 연극을 확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아르부조프 (1908~1986)은 소비에트 연방의 극작가이다. 순수한 극장인으로 출발하여, 처녀희곡 <클라스>(1930) 이래 극작으로 전환하여, 애정의 파탄을 강하게 이겨낸 하나의 여성을 그린 <타냐>(1938)는 그의 출세작으로 지목되며 오늘날에도 상연되고 있다. 독소전쟁 후의 희곡으로는 <청춘과의 해후>, <유럽 연대기>, <편력시대>가 있으나 그의 작가적 명성을 높인 것은 동부 시베리아의 수력발전소 건설을 무대로, 연애와 우정을 통해서 현대청년의 정신적 내면을 해명하고, 집단과 노동 속에서 단련되는 젊은이들의 성격과 신념을 그의 특유한 서정성을 곁들여 새로운 극형식으로 묘사한 <이르쿠츠크 이야기>(1959)이다. 그 후의 작품으로는 <23시 너머> <잃어버린 아들> <불쌍한 나의 마라트> <밤의 고백>(196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