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다큐멘터리 <명사들의 마지막 한마디: 제인 구달>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준 말은 “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된다(Hope comes from action)”였다. 이 짧은 말은 제인 구달이 평생 걸어온 길, 즉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구 전체의 운명을 향한 철학적 사유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암울한 절망의 끝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메시지이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냉철한 각성의 한마디였다.
1960년, 26세의 젊은 제인 구달은 한 권의 노트와 쌍안경 하나만을 들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Gombe National Park)으로 들어갔다. 여성 과학자가 밀림의 야생으로 들어가 혼자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 시절 사회 통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침팬지를 관찰하며, 그들이 도구를 사용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사회적 유대를 맺는 존재임을 증명해냈다. 이 발견은 인간 중심의 사고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과학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구달은 훗날 과학자로서의 명성보다도, 인간 탐욕이 초래한 지구환경 파괴와 터전을 잃은 야생의 비명 소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가 유언으로 남긴 “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한마디는 바로 그 절망의 현장을 목격한 경험에서 비롯된 신념이었다. 구달은 인간이 쏟아내는 말과 제도를 믿지 않았다. 대신,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플라스틱 병을 줄이고,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행동’ 속에 희망의 씨앗이 있다고 믿었다. 그녀에게 희망은 감정이나 신념이 아니라 ‘습관화된 선(善)’이었다. 다시 말해, 희망은 믿음이 아니라 ‘몸의 기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제인 구달은 이러한 ‘희망의 철학’을 말하면서도, 인간 사회의 무지와 폭력성에 대해 때로는 날카로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언행을 본 구달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마치 힘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수컷 침팬지를 보는 것 같다”고 비유했었다. 그리고 이날 농담 섞인 어조로 “가능하다면 트럼프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버리고 싶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이 발언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구달의 눈에는 트럼프가 상징하는 탐욕과 허세, 자연에 대한 무감각이야말로 인간 문명의 병리 그 자체였다. 그녀가 그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고 싶다”고 한 것은, 인간이 더 이상 다른 생명체와의 공존을 배우지 않는다면 결국 이 행성 자체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경고였다.
제인 구달의 언어는 언제나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윤리적 긴장이 깃들어 있다. “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결국 냉소에 대한 저항이다. 오늘의 세계는 기후 재난, 전쟁, 불평등으로 점점 더 피로해지고, 사람들은 “이미 늦었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구달은 말한다. 희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의 작은 발걸음 속에서 시작된다고. 행동 없는 희망은 공허하고, 희망 없는 행동은 방향을 잃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행동함으로써 희망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철학을 실천으로 증명했다. 전 세계 청소년 환경운동 ‘루츠 앤 슛츠(Roots & Shoots)’를 창립하여, 어린 세대가 직접 지역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 보호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그녀가 전한 메시지는 단순했다. “당신의 행동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이 실천의 윤리는 구달의 생애 전반을 관통하며,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보았다. (Roots and Shoots Global - Roots & Shoots Global)
제인 구달의 “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임을 의미한다. 그녀가 트럼프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고 싶다’고 한 것은, 단순한 인물 비판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한 본성을 향한 상징적 선언이었다. 우리가 그와 같은 폭력적 문명을 계속 허용한다면, 이 지구행성 또한 생명이 없는 ‘다른 별’처럼 황폐해질 것이다. 그래서 구달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렇게 들린다. “희망은 행동에서 비롯되며, 그 행동이 바로 이 지구를 다시 인간의 별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명사들의 마지막 한마디(Famous Last Words)〉는 인류의 대표적 사상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생전에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다. 이번에 특히 주목받은 제인 구달 박사 편은 단순한 인물 전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구달 박사가 인류 전체에게 던지는 ‘유언’에 가깝다. 지난 3월에 인터뷰를 마친 이 다큐는 구달이 사망한 뒤 공개할 것을 전제로 촬영된 영상으로, 진실하고 담담한 그녀의 어조 속에서 생과 죽음, 인간과 자연, 기술과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화려한 연출을 배제하고, 오직 구달의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한다. 90세를 넘긴 노학자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과 눈빛으로 지구의 파괴를 막기 위해 남은 세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잊은 채 기술과 자본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구달의 메시지는 “변화를 만드는 힘은 거대한 제도보다 한 사람의 의식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귀결된다.
이 다큐에서 특히 화제가 된 장면은, 그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론 머스크의 우주선에 태워 전부 우주로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 발언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면서도 다른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오만함에 대한 비판적 풍자다. 그녀가 우주에 내다버릴 탑승객으로 트럼프와 푸틴, 시진핑과 네탄야후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머스크가 그 우주선의 대장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술적 진보가 도덕적 성숙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은 것이다.
다큐멘타리〈명사들의 마지막 한마디〉는 죽음을 전제로 한 마지막 인터뷰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구달 박사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인류가 자연과 다시 조화롭게 연결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절실한 진리를 강조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유언이자 기도이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이야기하는 한 인간의 진실한 고백이다. 이 다큐는 한 과학자의 인터뷰라기보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를 위한 철학적 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