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틀려보길.
아이가 지난 주 받아쓰기 시험에서 3개를 틀려 왔다.
어려운 받침이나 글자를 틀린 것이 아니라 띄어쓰기를 헷갈려하다 틀린 것이었다.
"OO이도 아쉽겠다. 헷갈려 했던거 같네. 틀릴 수도 있지 뭐."
하고 별말은 하지 않았다.
1학년에게 받아쓰기에서 맞춤법과 마침표, 띄어쓰기는 꽤 중요하다.
저학년, 그러니까 1학년, 2학년 때가 아니면 받아쓰기 시험은 보지 않는 데다가
이렇게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띄어쓰기에서 무려 세개나 틀렸다는 것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첫째는 여태까지 받아쓰기 연습이라고 해봐야 숙제로 두 번 써가는 것이 다 였다.
이렇게 두 번 써보고 시험을 쳤었지만 지금까지 쳤던 3회의 시험에서 한 개 이상 틀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주 4회의 시험에 세 개를 틀렸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실망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아이는 그렇게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5회 받아쓰기 연습날이 되었다.
이번 주 받아쓰기 연습은 좀 더 열심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정해진 루틴을 지내다보니 이 날도 받아쓰기 연습 시간이 충분치가 않았다.
워낙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아이인데다 나 또한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지라
지난 주 띄어쓰기에서 세 개나 틀렸으니 알아서 시험 치기 전 꼼꼼히 보겠지 하고
다시 봐주진 않았다.
허둥 지둥 받아쓰기 연습을 끝내고 아이가 좋아하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급히 집을 나오면서
연습이 부족했다는 생각은 들긴 했었다.
5회 받아쓰기를 본 날, 하교하는 아이의 모습은 울.상. 그 자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만 보아도, 푹 숙인 고개만 보아도 엄마는 알 수 있다.
받아쓰기에 대해서는 절대 먼저 물어보지 않아야 겠다 속으로 다짐하였다.
아이는 앞에 앉은 남자친구에게 속상했던 일들을 마구 털어놓았다.
그 친구가 자꾸 뒤돌아 보는 것, 딸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에 간섭을 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한참 눈물을 쏟는 아이를 보니 그 남자 친구가
오늘 특별히 무엇인가를 더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받아쓰기에 그 남자친구는 백점을 받았고
자신에게 놀리는 듯한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 받아쓰기 시험 결과 때문에 속상한 마음과 더해져 이렇게 눈물이 날 만큼 감정이 상했구나 싶었다.
어느 정도 진정 후 이번에도 세 개를 틀린 아이의 받아쓰기 결과를 알게 되었다.
사실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보고 한 일곱개쯤은 틀린 줄 알았는데 결과를 보고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번 시험에서는 띄어쓰기는 잘 했지만 마침표를 찍는 곳과 안찍는 곳에 바꾸어 찍다보니
두문제를 한꺼번에 틀렸다. 7번, 8번 문제를 헷갈려 고민하다 틀리고 보니
9번에 평소 잘 알았던 '잃어버렸습니다' 글자도 급한 마음에 쓰다 틀린 듯 했다.
긴장감이 높고 불안을 잘 느끼는 첫째는 받아쓰기 조차도 연달아 틀린다. 지난 4회의 시험 역시 그랬다.
이렇게 속상한 날, 평소의 루틴대로 주어진 공부까지 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인듯 싶었다.
오늘은 쉬고 책이나 좀 읽다 운동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책을 조금 읽고 운동도 다녀오고 저녁이 되다.
학교 숙제인 틀린 것 두번씩 해오는 숙제는 꼭 해야하기 때문에 책상앞에 함께 앉았다.
딸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내 친구 OO이는 여태까지 받아쓰기를 한번도 틀린 적이 없대.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매일 연습을 하고 받아쓰기 보기 전날 또 연습을 한다는 거야. 나도 그렇게 하면 안될까?"
"어머나, OO이가 정말 열심히 하는 구나. 그런데 매일 하는게 힘들진 않을까? 그냥 매일 읽어보고 전날 두번쓰기 숙제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엄마, 혹시 엄마가 읽어주기 싫어서 그런거야?"
"아~~니, 그럴리가.. 너가 힘들까봐 그런거지.."
아이가 하루 정해진 양의 공부와 받아쓰기 까지 매일 쓰며 공부하면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고 흐지부지 끝날바엔 아이가 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노력부터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해서 꺼낸 말이었다.
"그럼 엄마 내가 아이디어가 있어. 내가 녹음해서 스스로 할게. 내가 읽는 것도 공부가 될거야~.
"대단한데~ 좋아. 정말 멋진 생각이다."
아이는 조용한 방에 들어가 받아쓰기 1번부터 10번까지 두번씩 또박또박 녹음을 했다.
띄어쓰기를 틀렸을 때 자신이 띄어 읽는 것에 집중을 안한 것 같다며
읽으면서도 집중해서 읽고 녹음을 했다며 들을 때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혼자 녹음한 것을 들으며 스스로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딸아이를 마음껏 칭찬해주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받아쓰기 연습을 하며 딸아이는 두세개 정도 틀렸다.
스스로 어디가 틀렸는지 확인하고 고치며
"지금 틀리는 것은 다행인거지~" 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스스로 틀린 부분에 형광펜을 칠하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이며 말했다.
"내일 이걸 맞으면 테이프를 떼어내고 형광펜을 지울거야. 이러면 받아쓰기 시험에서 문제 없겠지?"
"OO아, 엄마는 OO이가 받아쓰기 빵점을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 너가 이렇게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이 과정이 중요하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훌륭한 내 딸이야."
하며 마음껏 칭찬을 해주었다.
스스로 하는 받아쓰기 연습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고 열심히였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연구하는 그 모습은 꼬마 과학자 같이 보이기도 했다.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엽던지.
평소 연산 문제집은 10분만 앉아있어도 몸이 배배 꼬이는데 어쩜 저리 즐겁고 신날까 싶기도 했다.
아이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나왔을까?
만약 내가 받아쓰기 또 세개나 틀렸다고 타박했다면 절대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받아쓰기 결과에 속상한 것과 더해서 엄마에게 혼났다는 기억만 남지 않았을까?
게다가 받아쓰기를 처음부터 나의 주도로 열심히 연습해서 계속해서 백점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학년 받아쓰기는 틀려도 보고 스스로 속상함도 느껴봐야 노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일수록 실패는 많이 겪어봐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 때의 실패는 이토록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기만 하면 된다.
어릴 때 하는 아이의 실패의 극복 과정은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실패할까 두려워하거나, 실패에 대해 타박하거나 가슴아파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오늘도 기다림과 응원을 장착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