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김조민
몰래 가져다 쓴 시간과 버린 시간의 저물녘
책갈피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밤
불쑥 튀어나오는 이름처럼
자꾸 펼쳐지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철새들은 그림자를 두고 날아오릅니다
아무도 좌절하지 않는 나머지입니다
반짝이던 첫 문장은 낡아져 이제
이렇다 할 단어는 몇 개 없습니다만
더욱 납작한 마침표입니다
영원히 쫓기는 환영 같은 것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토록 뜨겁게 불타오르던 것들 모조리
거짓말이었습니까?
아직 오지 않은 안과 밖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두었습니다
잘라내지 못한 것은 그대로 두기로 합니다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자꾸 뻗는 줄기처럼
늘어가는 빈 페이지에 인기척을 끼워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