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발표지원 선정작
김조민
우리가 함부로 졌을 때 누군가 잘라냈던 가시를 발견했다
시시한 구덩이 옆이었다
그때 차라리 그렇게 된 게 오히려 좋은 일이었어
높게 떴던 풍선이 쨍 터지며 남긴 유언치고는
제법 철학적이었다
질문의 절반은 여전히 진흙 속에 묻힌 채였다
폭우가 남기고 간 몇 줌의 바닥은
가능하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다
이미 놓쳐 버린 시도였다
중요한 건 우리였을까
제멋대로 쥐어지던 우연 따위를 믿은 것뿐이었다면
계단 하나를 지을 수 있었을까
틈에서 돋아난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의심
건드릴수록 깊어지는 비난이었으나
어떤 이에게는 든든한 뿌리였을지도 몰랐다
아니라고 말할수록 깊숙하게 드러나는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르는 나머지 대답은 쓸데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