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이 피곤한 사람
제겐 쇼핑이란 즐겁다기보단 피곤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따지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예쁜지? 정말 꼭 필요한지? 없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소재는 어떤지? 기능성인지, 환경오염을 많이 일으키진 않는지? 세탁이나 세척이 쉬운지? 이왕이면 호감형 브랜드인지? 마르고 닳도록 빵꾸날 때까지 오래오래 쓸 수 있는지 등등.
저도 원래부터 이렇게 까다로운 소비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과도한 소비로 인한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바뀌게 됐죠. 그런 거 몰랐던 20대 땐 예쁘냐? -> 싸냐? -> 구매. 였는데, 쉽게 산 만큼 쉽게 방치하고 또 쉽게 버리곤 했습니다. 이제는 이왕이면 좋은 걸 하나 사서 오래 쓰자!라고 마음먹었는데, 그러고 나니 문제는... 물건 하나 사는 데 너~무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못 사서 버리면 또 쓰레기가 되니까요!
게다가 저는 백만장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 요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품질이 좋고 환경오염을 덜 일으키는 물건들은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는 플라스틱 제품보다 가격대가 높은 경우가 많은데요. 이 말은 즉 실패하면 치러야 할 선택비용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죠. 덕분에 가벼운 제 지갑을 위한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은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뇌를 겪으며 피땀눈물(?)이 어린 저의 가치소비 템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와 같은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부자가 아닌 사람의 가치소비
1. 일상 소비템부터 바꿔보기
'가치소비'라고 하면 보통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일상에서 쓰는 가벼운 제품들은 그래도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저는 아래 제품들을 추천합니다.
첫 번째는 대나무 칫솔! 대나무 칫솔은 은근히 진입장벽이 높은데요. 마트에서 묶음세일하는 일반 플라스틱 칫솔보다 더 비싸면서도 사용감이 뻣뻣할 것 같아서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이빨도 꽤 약한 편이라…) 그래도 재활용 하나도 안 되는 형형색색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죄책감을 자극해서 ㅠㅠ 결국 바꿨는데,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저는 치과의사가 만들었다는 닥터*아 제품을 쓰는데, 부드럽고 잇몸 상처도 나지 않아 추천합니다. 일반 칫솔보단 조금 비싼듯하지만 인터넷에서 묶음으로 사면 더 저렴하고(가벼워서 택배 쓰레기도 얼마 안 나와요!), 3개월 정도 쓰고 교체하는데 버릴 때마다 마음이 너무 개운해서 다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100% 유기농 면 마스크! 저렴한 부직포 마스크 널렸는데 굳이? 숨 쉴 때마다 입에 붙는 거 아니야? 싶어 고민했었지만, 이것도 너무 유용해요! 현재는 유기농 면을 사용하는 그린*리스 제품을 사용 중인데요, 코를 살려주는 디자인이라 숨을 방해하지도 않고, 끼고 자도 잠을 잘 잘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합니다. 특히 저녁에 세수하면서 가볍게 같이 빨아 말려놓으면 다음날 쓸 수 있으니 여러 번 쓰기 애매한 플라스틱 마스크보다 훨씬 위생적! 볼 때마다 귀여워 웃게 되는 디자인은 덤이에요.
세 번째는 실리콘 백. 비닐 지퍼백 대신 쓸 수 있게 만든 가방 모양 실리콘 용기인데요. 이것도 가격이 꽤 높아서 굳이? 했지만 사고 나서 너무 잘 쓰고 있어요. 단, 중요한 건 입구가 잘 열리는 디자인이어야 해요. 좁으면 내용물을 넣고 빼기가 불편하거든요. 저는 실*팟 제품 쓰고 있는데 무겁지 않고 입구가 시원하게 열려서 추천해요.
실리콘 백의 최고 장점은 바로 무소음! 비닐처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 깔끔해요. 작은 간식류나 샌드위치, 주먹밥 넣기 아주 좋고요. 입구를 열면 전자레인지에도 사용 가능해서 여러모로 정말 유용하답니다.
리필형 제품도 있어요.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가면 샴푸나 바디워시를 빈 공병에 담아서 알맹이만 구매할 수 있는데요. 액체형 세제도 있고요.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 세일 이벤트가 별로 없다는 게 슬프지만, 대신 친환경 가게에서 리필제품을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탄소중립포인트 캐시백으로 상쇄가 가능해요! 다만 이건 병을 따로 챙겨서 가게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 이런 여유가 없다면? 이것저것 다 따지며 새 물건 사기 참~ 어렵죠. 그럴 땐 중고거래가 최고입니다. 자잘한 물건이 필요할 때 한 번씩 동네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가거나 당근 어플을 켭니다. 중고로 저렴하게 나온 랜덤 물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에 좋은 일 하는 뿌듯함은 덤이에요. 혹여 실패하더라도 뭐, 저렴하게 샀으니까 덜 슬퍼요.(재당근하는 방법도 있고요) 만약 지금 있는 물건이 고장 났거나 유행이 지나서 새로 사려는 경우라면 '고쳐보기'도 방법입니다. 특히 옷은 동네 세탁소에서 수선해서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비싸지 않은 비용 투자로 현재 내 체형에 맞게 바꿔 입을 수 있죠.
■불편함을 사랑하기
자.. 이렇게 적어드리면 아마 "와~ 복잡해. 나는 못 하겠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맞아요. 가치소비는 즐겁지도, 멋지지도 않아요. 복잡하고 고민이 많아지고, 지갑 앞에서 남몰래 찌질해지기도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일이죠. 안 그래도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귀찮은 일을 더 늘이기는 싫으실 거예요. 다들 싸고 저렴하고 편리하게 인터넷 주문을 마구 사용하는(잔뜩 담겨오는 뽁뽁이와 스티로폼은 덤이죠) 걸 보면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돈과 시간을 지불하는 게 바보 되는 기분일 때도 많아요.
하지만 본래 '편리함'이란 디폴트 환경이 아니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다 번거로운 게 정상이에요. 자신이 먹을 걸 마련하고, 생활 기반을 다지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즉 사는 것 자체가 원래부터 손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죠. 그걸 저렴하고 편리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 덕분인 거고요.
저 하나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싶지만, 그래도 저는 앞으로도 불편함을 사랑해보려 합니다. 가치소비가 점점 일상화되어서 편리함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