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어느 날,
장문의 편지가 업무파일에 끼워 있었다.
"사랑스러운 정이야- -
요즘, 네가 통 웃지를 않네.
네가 웃는 소리가 특이해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나도 따라 쿡쿡 웃기도 했었는데- -
처음 널 본 건 비오는 날이 아니었어.
작년 겨울, 회사 사보에 산악회 소개하는 칼럼이 있었잖아. 7명 창립 멤버들이 아주 잘 하고 있다구. 회사에 커피 자판기 운영도 직접 하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구. 거기서 네 사진을 봤어. 본 순간 웬지 강한 끌림을 느꼈어. 난 운명을 믿는 사람이야. 나에게도 운명의 순간이 왔다고 말이야.
그 후로 무조건 서울로 오고 싶었구 너를 만나고 싶었구- - 그리고 만났지.
그런데, 넌 날 멀리 해.
내가 가버리길 바라는 것 같아 - -
아닌걸까? 우리는- -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걸까? 어떻게?
난, 네가 좋아하는 팥빙수 백 번 천 번 사주고 싶었는데- - 빙수 먹고 배가 아팠어도 난 좋았는데- - 이런 걸 행복이라 하는 걸까- - 나만의 착각 속에 빠졌는데- -
왜 난 너만 만나면 술을 마셨을까?
왜 술에 취하면 쓰레기 같은 얘기만 쏟아냈을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얘기를 남한테 해 본 적이 없어. 그런 내가- - 그렇게 단단하던 내가- - 네 앞에서는 허물어져 찌질이가 되어 버리니- - 역시 난 안 돼. 엉망이야- -
내가 망쳐 버렸어- -
사랑스런 정이야- -
난, 네 손을 잡고 싶어. 지금도.
나한테 기회를 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서로의 손을 놓쳐 버린다면 먼 훗 날, 그래- - 먼 훗 날 눈물을 흘리며 후회 할 것 같애- -
꼭 와 줘- -
7시. 빙수떡집."
'이건 사랑이 아니야- -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 수 있도록 가슴에 불이 켜지는 것이고, 적어도 내 가슴에 불이 켜져야 시작할 수 있는 거라구- -'
편지를 구기며 정이는 생각했다.
먼 훗날, 후회하는 날이 올지라도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고- - -
난 '헤어질 결심'을 뒤엎을 용기와 배짱이 조금 부족할 뿐이라고- -
이것도 비겁한 변명이 되는건가?
세상 일은 이루어질건 이루어지고, 끝날건 끝난다고- -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나는 거라고- - -
시간이 흐른 후, 당신도 '- - - 아니었어' 툭툭 털고 가볍게 돌아서길- -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그의 머리가 헤쳐지고 흩어져서
꽁꽁 숨어있던 그의 뽀얀 이마가 드러났다.
아- - 순간, 온 얼굴이 얼마나 환해지고-빛나던지- -
하마터면 소리 칠 뻔 했다.
"당신. 당신 이마가 얼마나 이쁜지 모르죠?"
만약, 그 말을 했더라면
그 남자, 얼굴을 붉혔을까?
"그런 말 처음 들어봐요" 하면서 환하게 웃었을까?
불연듯 궁금해지네- -
그 말을 못해준 게 많이 아쉽네- - -
그러면 그 사람, 조금은 행복했을까? 끝.
역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슬프다. 노- -노- -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라니- -
얼마 후, 그와 그녀가 다시 만나 시작 할 수는 없을까?
맘 속에 담아둔 그 사랑이 향기롭게 익어가고, 이심전심 알아채고 함께 할 수는 없을까?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자꾸 돌아보게 만드네- - -
이토록 서투른 연애라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