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오늘 좀 들러라. 줄 것도 있고"
작은 아들을 앞에 두고 말을 꺼내려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요양원에 가기로 했다. 여기로"
기쁨요양원에서 보내 온 시설 안내장을 내 놓았다.
"생각해 보니 이게 나을 거 같애서. 음음. 집은 니가 세를 놓던지 들어오든지 해라. 널 줄테니. 그리구 이건 니 어미가 니 결혼비용이라고 해 놓은 거다. 얼마 되지 않지만, 요긴한데 써라. 음음-"
자꾸 목이 잠겼다.
"너한테 많이 미안하구나. 너한테 해 준 것도 없구, 섭섭한 게 있다면 잊어라. 그리구 음음- 한 달에 한 번 이곳으로 전화를 해 줬으면 좋겠다. 나랑 할 말 없으면 그 곳 직원하고 통화해도 된다. 내가 죽었는지 어쨌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
자식놈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아버지, 아니예요' 하면 당장 취소 할 수도 있는데.
"처음에 갈 때 보호자와 같이 와야 된다니까 이번 주말 아침에 오너라"
"알겠어요"
얼굴을 숙인 채 대답을 하곤 그대로 돌아서 나간다. 일어서는 얼굴을 잠깐 보니 눈물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니, 나만의 착각인가? 내가 눈이 좀 흐려져서, 내 눈에 눈물이 고여 잘못 본 모양이다. 가슴이 아려왔다. 아마 애인한테 버림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설마 하다가 이별을 확인한 순간, 선명한 통증이 가슴을 때렸다.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까짓 거. 인생 뭐 있나.
가볍게 살아야지. 고민 같은 거는 하지 않겠다.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겠다.
집안 살림살이를 재활용 회사로 실어 냈다. 재활용 사장 동생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형님. 아직 팔팔한 나이인데 그런 곳에 왜 가려구 해요? 안가면 안 되는거요?"
"재미없어서. 사는 게 재미없어서. 죽을 만큼 재미없어서 간다. 왜?"
알고 지내는 몇몇 사람들을 찾아 인사를 마쳤다.
드디어 낼 아침, 난 떠난다. 그 곳이 연옥일지, 지옥일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겠다. 이곳 세상에서 가졌던 설움, 원망, 노여움, 희망 모든 걸 놓아 버리겠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