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5월 초.
그나마 다행인 건 날씨가 춥지 않았다.
그 어르신은 점심도 거르고 세시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우물우물, 끝이다.
오늘도 역시 한 개도 못 팔았다.
5시쯤 되자 어르신은 주섬주섬 운동화를 큰 가방에 담으셨다. 앉았던 자리를 한 번 쓱 - 둘러보시곤 자리를 떠났다.
'아니 - - 물건을 파시려면 퇴근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때까지 기다려 볼 것이지 - - 한가한 시간에 일 없이 앉아만 있다가 돌아가시다니 - - '
정이는 제 속이 답답해져 애를 태웠다.
"할아버지 - - 6시까지 - - 아니 7시까지 있어 보세요 - - 그때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 - "
기어코 참지 못하고 정이는 그 어르신께 말을 붙였다.
"일찍 안 나오셔도 되요 - - 차라리 점심 드시고 2시나 3시쯤 나오셔도 되요 - - "
"나도 아는데 - - 할멈이 아침 먹으면 돈 벌어오라고 나가라고 혀서 - - 저녁때는 밥 먹기전에 들어가야 - - 할멈이 밥때 지나서 들어오면 밥 안 준다고 - - 혀서 - - "
어르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네? 아 - - 근데 농사는 안 지으세요?"
"지었지 - - 작년까지 - - 고추도 하고 배추도 하고 - - "
"근데요?"
"다 팔아묵었어 - - "
"네? 아들이요? 그럼 신발장사 하다 망한거예요? 아들이?"
어르신은 입을 딱 붙이셨다.
뒷 얘기가 궁금했지만 정이는 돌아섰다. 속사정이 있을터, 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 - -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무조건 밖으로 내몰기만 하면 어떻해 - - 한 번이라도 할아버지가 장사하는 곳에 와보고 그런 말을 하시던지 - - '
공연히 보지 못한 할머니가 야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