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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순임

by 김정욱

6-27. 서울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한사코 순임이 서울을 고집했다.

무슨 까닭인지 물었지만 대답은 언제나 그냥이다. 그냥 서울에 가고 싶단다.

다행히 아는 형님이 연락을 해 와 인쇄소에 취직을 했다.

이제야 들떠 있던 인생이 정착하는 느낌, 내 인생에도 봄 날이 오는건가?


공씨는 순임에게 가능하면 지난 일을 묻지 않기로 맘먹었다. 지난 일은 지난대로 그냥 보내면 될 것이다.

공씨도 미주알고주알 지난 일들을 까발리고 싶지 않다. 나도 얘기하기 싫으니 순임도 그럴 것이다.

지난 일들은 모두 묻으면 될 일이다.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시치미 떼고 살고 싶다.

공연히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싶지 않다.


공씨가 혼인신고를 하자했다.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야 - - 혼인신고가 무슨 소용이람 - - "

"그래도 - - "

"호호호 - - 아저씨 - - 아직 구식이구나 - - "

"나야 뭐 그렇다쳐도 당신은 하는게 낫지 않아?"

"아니아니 - - 난 싫어 - - "

"나한테 정착한게 아니었어?"

"잊은거야? 난 나그네라니깐 - - "

"뭐?"


공씨는 허무한 심정이 되었다. 한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했다.

다시 가정을 이룬다는것에 부담감은 컸다.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순임을 사랑하고 맘을 내주면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올것 같은 끔찍한 상상도 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진창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맘이 편해지고 느슨해졌다.

남편 노릇 아내 노릇이 아니라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냈다.

두 칸짜리 집에서 니 방 내 방을 갖고, 때론 부부처럼 때론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가끔 친구가 되기도 했고 남이 되기도 했다.

공씨는 속마음으로 아이를 원한 적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그네 같던 순임의 맘도 잡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고 순임과 공씨는 그런대로 그냥저냥 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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