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순임

by 김정욱

21-27. 순임은 자신이,


병태를 따라 온 처음 그 맘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아무렇게 살고 싶어서 따라 나선 것은 분명 아니었다. 병태가 꺼낸 옛사랑에 혹해서? 아니 아니 - - 그것도 아니었다. 사랑 놀음에 신물이 난 순임은 이미 순수를 잃었다.


그저 따뜻한 곳에 있고 싶어서 - - 누군가의 등 뒤에 기대고 싶어서 - - 그 누군가가 병태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을 터, 순임은 너무 지쳤다. 그냥 쉬고 싶을 뿐이었다.


"병태야 얘기 좀 해 - - "

"뭔 얘기? 니 연애한 얘기? 재미겠는데 - - 언제부터야? 수호랑 그렇게 된 게?"

"내가 가는 게 맞겠지?"

"어딜 가? 그 놈 한테로?"

"너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 - 너 - -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

"절대 못 가 - 내가 용서 안 해. 내가 널 버리기 전엔 어디고 절대 못 간다고 -"

"니가 이렇게 거칠어진 건 나 때문이야 - - 내가 재수 없는 년이라고 - - "

"어쨌든 넌 아무데도 갈 수 없어 - 절대. 올 때는 니 맘대로 왔지만 가는 건 니 맘대로 안 된다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난 지구 끝까지 널 쫒아가서 끌구 올꺼야 알겠어?"


병태가 눈 앞에서 주먹을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님 말씀이 다 맞더라고 - - 그 전까지 효자였던 니가 변한 것도 내 탓이고 - - 니가 하는 일이 안 풀리는 것도 다 내 탓이야 - - "

"글쎄 - 무조건 - 절대 - 안 된다고 -"


병태가 핏 발 선 눈으로 순임을 쏘아 보더니 문을 쾅- 메치며 나가버렸다.

살다보면 어느 길목에서 또 만날지라도, 지금은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순임은 옷 몇 가지만 가방에 넣었다.


다시 그녀만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문득 수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멀리서라도 한 번 보고 싶은 얼굴이다.

석양을 등진 황금빛다발 속에 수호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수호도 살면서 가끔 내 생각을 할까? 하지 않는다 해도 서운하지 않다.

이 맘은 내 맘, 내 소중한 진심이다. 누가 뭐라 해도 바래지지 않을 또렷한 진심이다.


한 번쯤 사랑을 하였으니 된 건가?

남은 인생, 물처럼 흐르면 될 것이다.

수호를 향한 마음을 세상을 향해 풀어 놓으며, 구름따라 흐를 일이다.

내 맘이 머무는 곳에 머물고 흐르면 또 흐르리라 - -

어쩐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접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 - 이어지면 끊어지고 - - 지난하고 남루한 옛날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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