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속마음
“에이 아깝네.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 - ”
“그러게. 하하하”
“아저씨?”
“응? 왜?”
“아저씨. 제 맘속에 누군가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눈에 안 들어와요. 어떻해요?”
“병진이 얘기냐? 인연이 아닌가 보구나 - -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니 맘 쓰지 말아라”
“안 궁금하세요?”
“글쎄 - - 때가 되면 니가 말 해 주겠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구나”
“아저씨는 절 믿으세요?”
“음. 그럼 내가 사랑이를 안 믿으면 누굴 믿어?”
“헤헤. 아저씨 고마워요 - - 제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아저씨는 절 믿어 주실거죠?”
“믿지. 그럼 믿지. 그렇지만 자꾸 확인하지 마라. 무서운 생각이 드니까 - - ”
“헤헤헤”
사랑이가 사들인 큰 빨래 통이 그늘에 할 일 없이 세워져 있다. 민준은 수경식물을 몇 뿌리 사다가 띄어 놓을까 어쩔까 궁리중이다. 녀석에게 일단 물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얼굴을 보면 그만 그 생각을 까맣게 잊고 만다.
사랑이가 졸업을 하고 여기저기 취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시간은 적고 돈은 적당한 일자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걸 알았을 것이다. 민준이 급할 거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 했지만 정작 본인은 애가 달았다. 요즘에는 병진의 소식도 뜸했다. 소신대로 잘 지내고 있겠거니 - -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드디어 작은 잡지사에 취업이 되었다고 사랑이가 말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바래본다. 직장동료 또한 소중한 인연이다.
“아저씨가 선물 하나 하고 싶은데 - - ”
“선물요?”
“예쁜 옷을 두어벌 사던지 - - 카드 줄께”
“헤헤 역시 아저씨 짱!”
“친구하고 같이 가도 되죠?”
“그러려무나”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많이많이 사야지. 야홋 신난다”
“원 녀석도 - - ”
사랑이가 나가버리자 민준은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저녁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누군가 노년의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하더니 민준은 벌써부터 시작한 느낌이다.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할 듯 하다. 매일 집안 살림만 할 수 없으니 - - 점점 밖으로 나다니며 사람들과 만나고 먹고 노는 일에 흥미가 없어지는 지금, 혼자 놀 수 있는 뭔가를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남은 인생이 지루해질 것이다. 길어질 노년의 시간은 아무 일 없이 흘려보내기에는 터무니없이 길기만 하다. 자신은 그저 사랑이가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딱 그 시간까지만 살고 싶다. 마냥 길어진 노년의 시간은 두렵기만 하다.
사랑은 직장을 다니면 더 바빠질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가슴이 따뜻한 누군가를 만나면 사랑을 할지도 모르겠다. 한 집에 사는 아저씨 정도는 생각할 시간도 돌아볼 시간도 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말대로 진즉에 자신도 연애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시작하고 가슴 저리는 그 과정을 번복한다는 게 생각만으로도 피곤하고 지친다. 내게 사랑은 한 번뿐이면 족하다. 이미 끝나버린 사랑, 실패한 사랑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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