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46. 진심

by 김정욱

“어제 말했잖아요. 말 해 줄때까지 안 간다고”

“어린애냐? 떼를 쓰긴 - - ”

“진짠데”

“알았다. 오늘 저녁에 얘기하자. 그럼 됐지? 자 밥 먹고 회사 가자”

“오케이”

민준과 식사하는 내내 사랑은 빙글거리며 사랑스럽다는 듯 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은 몸이 굳어지고 목이 뻣뻣해져 밥그릇만 내려보며 어색해지고 있었다.

‘이건 뭐지? 내가 왜?’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시작을 해 보았으나 어느샌가 모든 생각들이 제멋대로 엉켰다. 민준은 자신의 맘 속 깊히, 아주 깊히 들어가고 싶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고 싶었다. 자신의 속 깊은 마음, 그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내면의 열망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겁나는 일이기도 했다. 사랑이한테도 들켜버린 자신의 사랑, 그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사랑이가 출근하자 민준은 허둥대며 집을 나섰다. 언제든 집을 나설 때면 꼼꼼히 하던 몸단장도 잊어버리고 설거지도 미룬 채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침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그제서야 자신의 옷차림을 보니 외출 시 입으려고 옷걸이에 얌전히 걸어둔 겉옷은 간데없고 낡은 츄리닝 상의 차림이다. 바지도 집에서 편하게 입던 낡은 바지. 따뜻한 어디엔가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머니를 더듬었다. 예상대로 지갑은 없고 간신히 휴대폰에 꽂혀 있는 주유카드 한 장만 있다. 잔고가 얼마더라. 아무려면 차 한잔 값은 있을테지 - - 서둘러 눈에 띄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넓고 조용한 찻집은 손님은 물론이고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10시 반. 이른 시각이다.

민준은 음악도 없는 적막한 찻집에 홀로 앉아 멍해진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스스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윤 민준 이란 사내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는 육십 초반. 별다른 욕망도 기쁨도 없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 하나 없는 초라한 인생. 그의 인생에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던가? 행복한 단꿈에 빠진 적은? 누구에게나 달란트가 있다던데 그게 뭐였지? 도대체 뭘 위해 살아 온 걸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나오는 건 한숨이다. 남루한 인생이다. 사랑을 지키지 못했으며 가까이 있는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시골에 혼자 사시던 아버지와는 이십몇년간 인연을 끊고 살았다. 무엇이 그의 가슴을 멍들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지겹게도 달라붙던 인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는 항상 먼 곳을 동경했다. 어디엔가 그림책에서나 보던 평화롭고 따스하고 행복한 곳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른 모습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그 몫의 행복은 없었다.

사랑이를 생각했다. 당찬 아이였다. 어린 나이 때,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을 때조차 결기있는 눈빛을 반짝였다. 자신의 의지로 내 손을 잡았고 내 곁에 왔으나 자신의 아빠는 따로 있음을 주장했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결단이었는지 서늘한 마음이었는지 떠올렸다. 민준조차 두 손 들었다.

그래 그래, 난 아저씨 할께. 민준은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사랑이가 사랑이란 명제를 놓고 수 년간 고민을 했다니 - -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하고 드디어 선언을 한 것이다. 내 아빠는 따로 있다고 선언하던 그 결기로 내 사랑은 아저씨라고 - - 당당히 민준에게 주장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이 단단한 사랑을 어쩔 것인가? 이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돌풍이 몰아치는 어지러운 마음속에서 사랑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왜일까? 사랑일까? 집착일까? 이기심일까?

그래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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