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내 하나의 사랑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문득 시장기가 돌아 국밥집에 들어갔다. 밥이 목에 걸려 도무지 삼켜지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서 해맑은 사랑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멀고 먼 일처럼 느껴졌다. 저절로 무릎이 꺽이고 무너질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끄러운 차 소리, 바람소리가 몰아쳤다.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냥 눕고 싶었다. 그대로 누워서 생각도, 마음도, 육신도 풍화되어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생각이, 마음이, 몸이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난간에 기대앉았다가 스르르 - 무너졌다. 저혈압인가? 저혈당인가? 까무룩 정신이 흐려졌다.
“아저씨, 아저씨”
사랑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렸다. 민준은 눈을 쏘아대는 불빛으로 절로 인상을 구겨졌다.
‘여기가 어디지? 이 세상인가? 저 세상인가?’
“깬거 다 알거든요. 겁쟁이 아저씨”
“흠. 흠”
“부끄럽죠? 어른이 아이한테 걱정이나 끼치고. 칫”
“흠. 흠. 몇 시냐?”
“눈부터 뜨시죠”
“흠”
“부끄럽죠? 그렇죠?”
“흠”
“눈 떠봐요. 내가 보고 싶지 않아요?”
“사랑아”
“하 - 눈 떴네. 아저씨. 이젠 괜찮은 거죠? 힝 - 걱정이나 시키고”
“사랑아. 음 - - 사랑아”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한 낮이다. 사랑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머리에 초췌한 얼굴이다. 밤을 새운 건가?
새삼 민준은 제 몸이 부끄러웠다. 좋았다. 나를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그 가족이 사랑이란 게 좋았다. 눈물이 났다.
“힝 - 아저씨. 바보같이 왜 울어요? 난 울고 싶어도 꽉 참고 있는데 - - ”
사랑의 손이 눈물을 닦았다.
‘그래 가자. 가보자 - - 우리 맘이 가는대로 가보자. 가보면 알겠지. 잘못된 길이라고 깨달음이 온다면 그때 다시 시작해도 될꺼야. 넌 아직 젊으니 - -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야. 그래. 그래 - - 가자’
민준은 사랑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집에 가자”
“이거 다 맞고 가야돼요. 한 시간은 꼼짝 말고 있어야 된다구요”
“넌 밥은 먹었니? 나가서 밥 먹고 와라”
“내가 아저씨처럼 부실한 줄 아세요? 난 팔팔한 청춘이라구요”
“그래. 넌 좋겠다. 팔팔해서”
“헤헤 - 이제야 아저씨 같네”
“미안하구나. 넌 회사는?”
“미안하죠? 많이 미안하죠? 이제부터는 날 이렇게 놀래키면 절대 안돼요. 절대”
“그래. 그래 알았다”
“씩씩하게 운동도 많이 하고 많이 먹고 튼튼해져야 해요. 알았죠?”
“많이 먹고?”
“당연하죠. 이건 의무예요. 의무, 아저씨 의무. 언더스탠?”
“어이쿠. 어려운 의무구나. 조용히 늙을라 했더니”
“칫. 누구 맘대로. 노. 노. 내 허락 없이는 늙어서도 안돼요. 노오 - ”
“무섭구나”
“헤헤 - - ”
민준은 사랑의 손을 꽉잡고 흔들었다. 눈으로 손으로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사랑아 - - 사랑아. 이제부턴 니가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다. 이젠 - - ’
뜨거운 불덩이가 목에 걸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가 이 인생의 결말을 알 수 있으랴. 누가 잘했다고, 잘못했다고 시시비비를 논할 것인가?
각자 인생은 각자 몫이다. 저만의 사랑도, 슬픔도, 고통도 오롯이 저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말했던가? 이 얼마나 공평한가? 눈물 총량의 법칙이라니 - - 큭.
'믿겠다. 믿어 보겠다. 난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 이 초라한 사내 윤 민준 인생에도 봄날은 오는 건가?'
평생 갖지 못한 행복, 이제야말로 꼭 행복해지겠다고 민준은 다짐하고 다짐했다. 끝.
드디어 끝이다. 결말이다. 휴우 - - -
픽션입니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우디 앨런이 양딸과 결혼 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 - 처음엔 헐! 그럴수가? 그렇다고? 자유로운 영혼인가? 양(?)놈들이라 그런건가? 뭐지? 혼자 궁시렁대다가 그럼 나를 이해시켜 보자. 설득해보자 해서 쓰게 되었는데, 그동안 중간쯤 쓰다가 중단 - - 밀린 숙제처럼 돼버렸고, 이리 저리, 이렇게 저렇게 생각만 하다가 잘 되질 않아서 - - 쭉 미뤄두고 있다가 - - 어느 날, 그냥 써보자. 까짓꺼. 해서 다시 시작을 했는데 - -
과연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어서, 그게 나일지라도, 얘기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고 말았는데 - - 장장 200자 원고지 380장으로 - - 하하. 음 - 당연하지 싶다가도 이 정도는 필요하지 - - 저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 - 드디어 결말에 도달했습니다. 스스로 대견, 뿌듯!!
글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단편보다 확실히 쓰기는 편했다는 것. 그러므로 앞으로는 장편으로 거침없이 달려볼까 하는 맘이 슬며시 생기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뭐야?' '민준의 육아일기인가?' '민준의 일기장인가?' '뭔 말을 하려고 질질 끄는거야?' '생활일기같은 건가?' 등등. 궁금증이 많았을텐데도 끝까지 참아주시고 읽어주신 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사실 '사랑'은 이렇다. 저렇다. 누가 감히 정의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백이면 백사람, 백가지 사랑이 있을터, 다름이 있을뿐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영역은 아닌것.
그저 '사랑'은 '사랑' 만으로 순수하고 진실되고 소중한 '생'의 의미이며 가치이고 존재 이유인것을.
하기야 내 사랑을 누구에게 이해받고 안 받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터 - - 글을 쓰는 동안 그냥 인정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냅둬! 그냥 사랑하라고 그래!' 숙제 끝.
근데 그 사람들은 잘 살고 있겠죠? 갑자기 궁금해지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