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5. 사랑

by 김정욱

불안 불안, 태풍 속 고요처럼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사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에 들어가 있고, 지수는 지수대로 회사일을 가져와 혼자 서재에 있고, 민준은 혼자 거실로, 주방으로 맴돌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이 집에는 7시가 넘어 8시가 다 되도록 식사를 차리는 사람이 없다. 민준은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가정집 냉장고에 작은 생수만 잔뜩 들어있고 식재료 하나 없다. 시들어가는 사과 몇 개에, 우유 몇 통, 빵 두덩이. 장모님이 넣어주신 김치 한 통. 그게 전부다.

민준은 인력회사 전화번호를 뒤졌다.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도우미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사랑이와 민준은 영양실조에 걸릴 것이다.

“사랑아. 바쁘니?”

사랑이가 문을 조금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 마트 갈래?”

“이거 드실래요?”

빵 하나를 내밀었다.

“나가자”

문 밖을 나서자 사랑은 깡총깡총 뛰었다.

“매일 빵 먹니?”

“네, 집에 올 때 두 개 사 와요. 낼 아침꺼 까지”

“그랬구나 - - 낼 부터는 집에서 밥 해 먹자. 아침은 좀 힘들고 저녁에는 아저씨가 밥 할께”

“그래두 되요? 나도 밥 할 수 있는데 - - 쉬워요. 쌀 씻어서 밥솥에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데. 헤헤”

“그래그래. 담 주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 아주머니가 오실거야. 반찬도 해 주시고 그럴거니까 이제 우리, 집에서 밥 해 먹자”

“좋아요. 아저씨. 하하하하”

사랑이가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어제꼈다.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다. 이 아이는 같이 밥 해 먹자는 말이 그렇게 좋은걸까? 의외의 모습에 오히려 민준이 놀랐다.

“그렇게 좋니?”

“그럼요 - - 생각만 했는데 그 일이 딱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기쁠때는 맘 껏 기뻐해야죠”

벌써 이 아이는 기쁨의 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아챈건가? 조용했던 아이는 이미 철이 나버린 듯 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으며 묻고 싶은 말도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 누군가가 말 해줄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걸 진즉 깨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준은 가슴 한편이 아려왔지만 모른척 하기로 했다. 일일이 위로하고 설명하기엔 세상은 견뎌야 할 것들이 많다. 어른이고 남자인 자신도 아직도 세상은 어렵고 힘들고 무겁다.

“우리, 오늘은 맛있는 밥 먹으러 가자. 오면서 마트도 들리고 - - ”

“좋아요. 아저씨”

저녁 8시, 식당에는 술꾼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민준은 손님이 적어 보이는 식당으로 사랑이를 데리고 갔다. 찌개 집이었다.

“너, 찌개 좋아하니? 매운 거는?”

“네, 전 무조건 좋아요. 매운 떡볶이도 잘 먹는데 - - 눈물 나면 그냥 울면 되요. 헤헤”

사랑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자꾸 묻게 되었다. 지수가 무심하다고 나무랬지만 자신 또한 사랑에게 무심했다. 미안한 맘이 들면서 앞으로는 좀 다정한 아저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이 아이는 어른 맘이 된 거야?’ 다행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마음이 작아지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씩씩하게 견뎌준 아이가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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