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 한참동안이나 학교 안 풍문들은 순자를 중심으로 돌았다.
누구도 순자를 디스하지 못했으며 순자를 주인공으로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순자가 댄디보이를 좋아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이다. 도발진주가 순자를 좋아한 건 사실이다. 당연히 순자의 눈높이에 다다르지 못했으므로 그 또한 가슴 아픈 짝사랑이다.
이상한 결말이긴 했지만 아이들은 수긍했다.
순자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들이 꿈만 꾸는 사랑을 이미 하고 있는 순자가 아니던가?
아무 말이건 듣고자 했으나 순자는 쉬는 시간에 잠만 자거나 영어공부만 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이들의 맘과 몸을 흔들던 열병이 잠잠해지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에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조용하고 은밀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이 학교를 관두셨대"
"왜? 왜? 왜?"
딱따구리 선영은 흥분하면 무슨 말이든 세 번씩 반복한다.
"사모님이 돌아 가셨대. 근데 학교는 왜 관두는 거지?"
"어쩜. 어쩜. 어쩜. 너무 사랑하셨나봐. 당신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소. 그런 거 아닐까? 어쩜. 어쩌면 좋아. 어떻게 해?"
나름 유쾌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과도 눈높이도 잘 맞춰주고 은근 고집과 소신이 있었다. 아이들과 노래로 소통하면서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낭만조각들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였을지도 모를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