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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by 김정욱

5-13. 엄마는 가끔 이런 궁금증이 든단다.


한 서방의 어떤 모습이 우리 공주의 눈에 들어왔을까?

사랑이 처음 눈으로 들어와서 가슴에서 꽃 피우는 시간이 어떤 사람은 찰나의 순간이기도 하고, 가만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 수도 있다는데, 우리 공주는 어땠을까?

넌 말했지. 첨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도자기 공방 친구들 모임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느낌이 없었다고. 그러던 어느 정기모임 날, 한 서방이 그랬다지.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라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고. 차만 마시고 일찍 일어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렸다고. 웬지 좋은 사람 같았다고.


엄마 아빠 연애 얘기를 잠깐 할까?

니 아빠와 엄마는 시골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단다. 동네 오빠이기도 했는데 키도 크고 잘 생겨서 인기가 아주 많았지. 하지만 어른들은 남자가 잘 생기면 인물값 한다고 못마땅해 하셨단다. 남자는 남자다우면 그만이라고 말이야. 어쨌거나 니 아빠 진구씨가, 아 - 그때는 진구야 그랬지만(사실 생일이 10달밖에 차이가 안나서 이름을 불렀다 내 맘대로)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단다.

마을에서 제법 잘 사는 집 애였는데, 시골살림에도 그 여자애는 치마에 구두를 신고 다녔단다. 하긴 니 아빠와 그 애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끝날 무렵, 그 여자애 집이 이사를 갔다. 사업이 망했다고도 하고 그 애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도 하고, 소문이 그랬는데 자세한 건 몰라.


아무튼 혼자 남은 니 아빠가 내 눈에는 불쌍해 보이더라.

아마도 우리 연애는 사랑보다 측은지심이 먼저인 거 같구나. 니 아빠는 아니겠지만 나는 니 아빠가 맘에 있었거든.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니. 내 맘이고 내 자유인데.

씩씩한 내가 자꾸 대시를 했지. 무덤덤하게 보기만 하던 니 아빠한테 나중엔 날 좋아하게 될거라고 큰소리도 쳐가며. 그래도 맘을 주지 않아서 상심을 많이 했어.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무슨 연애소설을 보게 되었는데, 만화였나?

아무튼 거기에 이런 게 나오더라. 사랑하는 사람의 맘을 잡으려면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오히려 무관심한 척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재잘재잘 옆에서 떠드는 사람보다 말도 안하고 무관심하게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는 법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쿵 - 머리는 때리는 큰 깨달음을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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