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데도 방식이 있을까요?
적어도 당사자가 떠남을, 헤어짐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 초, 아주 추운 어느 날,
어르신이 떠나시는 날, 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속으로는 식사 잘 하시고, 잠은 꼭 밤에 주무시고, 운동 시간에는 운동도 꼭 따라하시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마시고, 그저 새로 만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슬픔도, 원망도, 노여움도 모두 내려 놓으시고, 그저 웃으시라고. . .그렇게 오늘 내일을 보내다 보면, 어느 날은 자식도 보고, 손주도 보실꺼라고,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저는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어요.
따지고 보면 다 어렵고 힘든 일인 걸 알기 때문이죠. 엉성하게 남은 치아로 씹지 못하시고, 연하곤란이 생겨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 하시고, 밤에 잠이 안 와 때론 컴컴한 아파트 복도를 배회하고, 인적이 끊긴 주차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신다는 걸 잘 알고 있죠. 그래서 가끔 이웃 사람들 눈에 띄어 아들 집으로 전화가 가기도 하고, 경비아저씨가 집에 모셔다 드리기도 했었죠. 잘 드시지 못하니 당연히 기운이 딸려 제대로 걷지 못하시니, 언감생심 운동이라니요?
웃음은 진즉에 잊어버리셔서 TV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와도 잘 웃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속으로는 '너는 무엇이 그리 좋으냐'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저는 어르신 돌봄요양보호사로 5년째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일과 감정을 최대한 분리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정이 들어버렸어요.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속 맘을 짐작할 수 있게 된거죠.
어르신이 요양원 가시는 그 날 아침. 제가 한 일은 어르신 머리를 감기고 깨끗하게 씻고, 로숀을 바르고, 예쁘게 머리띠 해드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드리고, 물 한잔을 드린 것 뿐이었어요.
10시쯤, 시설 관계자가 와서 아들이랑 같이 나가시면서도 뒤도 안돌아보시더라고요. 당신은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가시는 줄 알고 가셨어요. 치료 받고 다시 집에 오시는 줄 아신거예요.
현관에서 배웅하던 제가 쫒아나가 엘레베이터 앞에서 어르신을 불렀어요.
"잠깐만요. 잠깐만. . 한 번 안아볼께요"
웬일인지 어르신이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말없이 서로의 등을 쓰담쓰담. 또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요. 작별인사도요. 저는 눈물이 쏟아질것 같아 얼른 돌아섰어요.
'이게 이별하는 방식으로 맞는 건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요양원으로 모시게 됬으면 어르신이 충분히 받아드리고 결정할 수 있게 도와드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어르신이 정신을 다 놓으신것도 아닌데, 다 아시는데, 아직 총기가 있으신데, 그러면 안 되는거 아닌가요?
이십 몇 년간 살던 집과 매일 쓰던 물건들과도 이별하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고 다독이고 결심하고 그런 시간들을 가지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이웃에 살던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던 친구들 하고도 작별인사를 하실 수있게 조금만 더- - 기다려 줄 수는 없었을까요?
생각하면 서럽고 섭섭한 맘이 자꾸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슬픈건지 안타까운건지, 마음이 너무 무거워집니다. 일을 시작해서 처음 만난 어르신이라 그럴까요? 처음 당하는 이별이라 그런지 한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냥 우리네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나이 먹고 늙고 병들고 그러잖아요.
답답한 마음에 저 혼자, 올 해가 가기전에 때늦은 작별인사를 해봅니다.
"어르신. 괜찮으신거죠? 아마 지금쯤이면 자식들 속사정을 다 헤아리시고 체념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어르신, 작년 가을에 아들이 울엄마 꽃 좋아 한다고, 아름들이 큰 국화화분을 사왔잖아요. 노란 국화가 활짝 피니 얼마나 이쁘던지. . .어르신이 매일 자랑 하셨잖아요. 어르신, 우리 좋았던 일만 생각하기로 해요. 저도 어르신과 함께 하는 동안 인생공부 많이 했어요. 제가 사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그러셨죠. '암껏도 아녀- - -' 지나면 오늘의 이별도 암껏도 아닌 일이 될 수 있겠죠? 어르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맘 편히 지내세요- - - -"
'이런 저런 일들로 어수선하고, 힘 든 12월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일들이 잘 - - 풀리겠죠?
두 손 모아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