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느낀

재능과 그 애매함에 대해서

by 방구석 딜라씨


난 진심으로 재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되 결코 같은 재능을 가지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압도적인 재능'에 매료되고 그것을 줄곧 동경하는 듯하다. 우리는 종종 수많은 매체에서 뛰어난 재능이 모든 노력을 압도하거나, 엄청난 노력이 뛰어난 재능을 결국에는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접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이것인데, 대개 노력은 재능으로써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을 비틀며 나타난 클리셰가 흔히 말하는 '노력의 천재'라는 타이틀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아무런 재능이 없는 둔재가 엄청난 노력의 재능을 발휘하여 결국 다른 압도적인 재능을 넘어선다는 서사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줄거리들은 이야기의 제공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때때로 나와 같은 둔재들을 위로하는 척 기만하는 것으로 느껴지곤 한다. '정말 꾸준히,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당신도 압도적인 재능을 넘어설 수 있다.'라는 말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속에는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A'의 노력은 반영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확한 노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않기에 나는 이따금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노력이라는 말은 사전상의 뜻풀이마저도 실로 애매모호한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만 시간의 법칙'을 다시 한번 길게 풀어쓴 느낌이다. 하지만, 만약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쓴다고 해도 그 방식이 오히려 나의 목적과 멀어진다면, 이는 노력이 아닌 그저 시간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모름에 따라, 그 어떤 업적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내가 과연 노력을 하지 않아 그 위대한 이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로 인한 열등감에 찌들어 내린 결론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저 사전적 의미에는 굉장한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말 '노력의 천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함정이 숨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력은 신체의 활용과 마음 외에, 사고마저도 정확하게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정확하고 정교한 목표 설정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이든 빠르게 적응해 버리는 특징이 있어 수많은 마음과 행동들이 관성을 가지게 되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노력은 목적과 무관한 행동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나를 '노력의 천재'가 아닌 '애매한 재능인'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압도적 재능'을 가져도 이는 문제 투성이다. 인간은 평생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찰하며 살아가는데, 이 일생 동안 자신의 재능을 마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며, 평생에 걸쳐도 그 재능의 개화를 맛보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재다능이라는 말에 따라 각각의 인간이 엄청난 재능 하나와 그럭저럭 애매한 재능 몇 가지를 가진다고 가정해 본다. 하지만 바퀴가 발명되고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시대에 '압도적으로 인력거를 잘 끄는 재능'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기계장치에 의해 대체된 지 오래이다. 이러한 재능을 가진 이는 평생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자신의 애매한 재능이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재능이라 믿고 노력할 때, 그 분야의 압도적 재능을 가진 이를 넘어설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재능과 애매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우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재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역시 다른 타인의 재능을 풀어내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혹은 타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재능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애매한 어떤 재능들이 다른 이들의 눈에 하나씩 비춰지며, 그 애매함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애매함이 있다면 그것이 흔히 일컬어지는 '위대한 재능'일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수많은 재능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떤 재능은 다른 재능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반대로 평생 묻히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재능마저 결국 경험해 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경험은 개인의 환경에 따라 모두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의 다양성 속에서 수많은 재능들이 발견되거나, 혹은 인력거의 재능처럼 사라지기도 할 것이다.


결국 재능 역시 우리가 살아감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상황에 걸맞은 개인으로 변모하고 어쩌면 정말 특화되는 것이다. 한 번 피어난 재능은 결국 시들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다른 재능의 양분이 될지 씨앗이 될지는 결국 아무도 모른다.


나는 종종 나 스스로를 무엇을 해도 중간 언저리에는 도달하지만, 결국 최고가 되지 못하는 애매한 재능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애매함'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내가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은 결국 나를 싫어하는 행위일 것이다. 어쩌면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압도적인 재능을 꿈꿔왔기에, 이것저것 줄곧 잘 건드려보는 것에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런 애매한 재능들이 결국 하나의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닌 작고 화려하진 않은 숲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쯤 나의 재능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구석에서-

Dilla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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