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눌러쓴

기록에 대해서

by 방구석 딜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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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록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연필을 쥐고 글을 쓰면 꾹꾹 눌러쓰는 버릇 때문에 잘못 쓴 글자를 지우개로 지워도 흔적이 남아 새로 쓰는 글자에 자국이 남는 것이 싫었다. 또 힘을 주어 글씨를 쓰니 손이 너무 아팠다. 아프고 힘든 것을 싫어하는 어린 나는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시간이 지나 글을 쓰는 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은 나는 악필이 되었고, 나의 글씨는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첫 기록 수단은 나마저도 싫어하고 불쾌해하는 것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 쉽게 타는 얼굴, 작은 눈, 큰 콧구멍, 드러난 광대, 튀어나온 입술, 빼빼 마른 상체와 굵은 하체 등. 거울을 들여다보면 무엇 하나 조화롭거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진 속 모델이 아닌 렌즈 뒤편의 감독이나 작가가 되기를 선호했다. 이는 나 자신의 기록보다 남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기에 나의 흔적이 적게 남았고, 자연스럽게 잊거나 잃어버려도 상관없다고 느껴졌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내게 가치 없는 기록들을 삭제하다 보니 오히려 남는 기록들은 렌즈 밖에 있지 않은 나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핸드폰의 사진첩을 정리할 때는 다른 것의 사진이 아닌 내 사진이 많이 남았다. 다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나의 기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는 기록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과거의 기록을 보며 현재의 나를 위로할 때, 나는 비참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이때는 곧잘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지금은 잘 웃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한참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나름 만족할 만한 몸이 만들어졌을 때 찍은 사진은 '이젠 그렇지 않은 나'에게 언제든 다시 저런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을 주었고, 이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감싸주는 방어기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의 나를 비판하거나 위로함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배워왔지만, 지금의 나는 이를 현재의 내가 이따위여도 된다는 합리화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쯤, 다시 한번 카메라 뒤로 나를 숨기기 시작했다.

과거의 좋았던 기록들이 지금 내 삶의 가치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늘 지금의 내가 과거보다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나는 더 이상 기록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지금 기록해 봤자 과거의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나와 동시간대에 살고 있는 타인의 못난 기록들을 보며, 자신이 아닌 남과 비교하고 내가 더 나은 점을 찾는 데 열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닌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때때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게 되면 질투를 넘어 분노했고, 그 날카로운 감정의 화살 끝은 나를 향하는 기묘한 굴레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기록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예측하고 더 좋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방치해 왔다. 당면한 문제는 과거의 내가 했던 대로 하면 해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해결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라면 해결했을 테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나는 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나를 갉아먹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나름 빛나던 과거는 지방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비참함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당장은 바뀌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사라진 가까운 과거의 기록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난 그토록 싫어하던 기록에 숨어 현재를 살지 않았으니 여전히 내 기록은 멈춰 있었다.


새로운 기록을 해야 했다. 사진이나 글씨가 아닌, 휘발성이 있으면서도 영원히 남는 기록. 넘치는 자기혐오와 불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해소되고 더 나은 내가 되었을 때에도 위안 삼지 못하고 더 앞으로 나갈 추진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기록이 필요했다. 가장 비참한 과거가 될 지금을 남길 수 있는 기록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게 된 새로운 기록 수단은 음악이었다.


음악이라는 기록은 애매한 휘발성을 가진다. 몇 분 내지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야기가 자리한다. 동시에 한 시대를 아우르는 기록이 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위대함을 꿈꾸지 않기에, 그보다는 휘발성에 매료되었다. 음원 유통사나 음원 플랫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가 남긴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말이다. 만일 나조차도 찾아 듣지 않게 된다면 그 또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니 정말 애매한 휘발성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는 영원할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남을 나만의 기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꽤나 무책임하게 기분 나쁜 일기와 같은 내 음악을 대면한 나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피조물을 마주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피조물은 나와 같이 엉성하고 부끄러움이 많으며 늘 자신을 탓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의 기록을 대하는 방식과는 달리, 나는 스스로에게 잘못이나 문제를 탓하기보다는 더 나은 해결책과 위로를 건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 음악을 대하는 순간, 나는 부모이자 선생이며 감독이자 청취자가 된다. 모두가 다른 것을 원하기에 내 음악은 더 바삐 움직일 것이고 더 나아지길 원할 것이다. 내가 그러길 바라니까.


모든 기록이 완벽할 수 없고 나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이번 기록 방법은 내가 외면하지 않는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구석에서-

Dilla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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