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꿔온

꿈에 관하여

by 방구석 딜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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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4살의 어두운 성남의 지하방으로 돌아간다. 가위에 눌린 그 밤, 부모님의 한숨이 귀신의 속삭임처럼 메아리쳤다. “월세, 빚, 어쩌나.” 어린 나에게 그 말은 이름 모를 공포였다. 꿈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짓눌렸다. 지금도 소름 돋는 그 악몽은 내 불안의 씨앗을 깊이 심었다.

하지만 꿈은 잔인한 얼굴만 가진 건 아니다. 때론 사탕처럼 달콤하고, 때론 물처럼 필수적인 무언가로, 내 손에 작은 기쁨을 쥐어준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담처럼, 나는 꿈을 현실로 곱씹으며 그 의미를 찾아 헤맨다.

꿈은 이중적이다. 잠속의 무의식 세계이기도, 현실의 열망이기도 하다. 영어 “dream”도 잠속의 꿈과 소망을 동시에 품는다. 어린 시절, 돼지꿈을 꾸고 부모님께 자랑하며 용돈을 챙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의미 없는 개꿈이었지만, 내게는 웃음과 설렘을 안겼다. 어떤 날은 기억 없는 꿈 덕에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꿈은 소소한 달콤함으로 악몽의 상처를 덮었다. 무엇보다 꿈은 나를 움직였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열망을 향해 발버둥 치게 하는 힘이 꿈 안에 있었다.


다만, 꿈을 좇는 길은 잔인하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꿈은 손을 뻗는 순간 사라진다. 10대 시절, 나는 꿈에 중독되었다. 하루 12시간을 자며 꿈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그곳에는 불안도 부족함도 없었다. 하지만 깨어난 뒤에는 텅 빈 방과 깨질 듯한 두통만 남았다. 현실의 허기는 꿈을 배신했다. 그때 깨달았다. 꿈은 공짜로 오지만, 현실로 가져오려면 대가가 따른다.


꿈꾸는 건 자유지만, 이루는 건 좌절의 연속이다. 그 좌절 속에서 나는 나만의 꿈을 정의했다. “꿈을 현실로 가져와 팔고, 그로 또 다른 꿈을 이루는 것.” 말장난 같지만, 이 꿈은 나를 방구석에서 끌어낸다. 내 음악이나 글을 세상에 내놓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걸로 또 다른 창작을 꿈꾸는 것. 돼지꿈을 팔아 용돈을 챙기듯, 나는 내 꿈을 영감으로 바꿔 세상에 내놓고 싶다.


때론 이 집착이 뒤틀린다. “타인의 꿈마저 사서 내 꿈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든다. 타인의 빛나는 꿈—그들의 음악, 이야기, 성공—을 보면 질투가 아닌 동경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 동경은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한다. 이 발버둥이 꿈이 아니길, 꿈이라면 깨지 않길 바란다.

꿈은 공짜이면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꿈을 사고팔며 현실에서 그 가치를 증명한다. 내 방구석에 흩어진 꿈의 씨앗—어떤 것은 악몽으로 썩었고, 어떤 것은 영감으로 싹텄다. 하지만 내가 발버둥 치는 한, 그 씨앗은 자란다. 언젠가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을 깨우고, 그 꿈이 또 다른 꿈을 낳는다면, 나는 내 불안을 껴안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꿈은 흙을 뚫고 싹트거나, 썩어서 다른 꿈의 양분이 된다. 오늘도 나는 방구석에서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이 언젠가 작은 숲이 되길 꿈꾸며.

방구석에서 – Dilla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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