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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들리지 않아도 곁에 있다

잔소리 많은 엄마, 조용한 엄마

by 맹그리

간식을 찾는 딸을 위해 햄버거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운 시야에 딸아이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들어왔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딸의 모습이 겹쳐서 자꾸만 눈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한 아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던 아이의 얼굴에 자리했던 웃음 순식간에 사라졌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는 두 친구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쉿, 쉿!”.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맞은편에 앉은 두 아이는 위기에 빠진 친구를 돕겠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기세 좋게 전화를 받던 아이의 어깨가 점점 움추러들더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아들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약속한 숙제를 하지 않고 놀러 나온 것 같았다. 이후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누가 더 잔소리 대마왕 엄마와 사는가?’로 빠르게 전환됐다. ‘우리 딸도 나를 저렇게 생각할까?’ 싶어 뜨끔하던 찰나, 한 아이의 말이 마음에 무겁게 꽂혔다.


“그래도 나는 너네가 부럽다. 우리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하나도.”


그 아이는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아이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두 친구의 목소리가 커지면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게 분위기를 조절했다. “춤을 정말 잘 추니까 K팝 댄서를 해보면 어때?”라며 친구의 장점을 섬세하게 짚어주며 친구의 기를 살려 주기도 했다.


‘어떻게 저렇게 반듯하고, 따뜻하게 키우셨을까?’ 하고 부모님이 궁금해졌을 만큼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얼굴에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건 내가 어린 시절, 품고 있던 마음과 닮아 있었다. 어렸던 내가 단번에 소화할 수 없어 조각조각 잘게 삼켜야 했던 외로움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에겐 먹고살기 버거운 시절이었다. 아빠는 새벽에 공장으로 출근해 깜깜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집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사랑’을 느껴야만 했다. 아빠가 보내는 ‘사랑’은 머리에는 닿았지만, 마음까진 닿지 못했다.


군데군데 채우지 못한 구멍을 안고, 어느덧 나는 ‘부모’가 되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자식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되어 알았다.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자식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하고, 마음이 꽉 차는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한참 작은 자식이 나보다 한없이 크고, 넓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어 가기도 한다는 것을. 아마도 저 아이가 부모에게 그런 아이겠지.


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아이는 너무 어렸다. 마음속으로 아이 곁에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엄마는, 네가 너무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서 말할 게 없으셨을 거야. 너를 무척 사랑하고 계실 거야.”


사랑은 말에 담기지만, 때로는 묵묵한 발걸음과 더 줄 게 없어 미안해하는 얼굴에도 담긴다. 언젠간 아이도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겠지. 사려 깊은 아이니까 말이다.


준비된 햄버거를 챙겨 가게를 나섰다. 아이 마음에 바람이 든 구멍이 너무 늦지 않게 채워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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