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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율
Sep 15. 2021
서너 살의 동그란 배
2021.09.15
배는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차례상에 올려진 배를 본 순간부터 후식으로 과일 깎아먹는 시간을 기다리지만, 생각보다 어른들은 느리다.
식사시간이 되면 후딱 밥을 먹고 밥상머리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구석으로 몸을 질질 끌고 가 과일 바구니에 어떤 과일이 있든
배를 은근슬쩍 골랐다.
작은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배의 모양새를 눈으로 보고, 까끌까끌한 껍질 감촉을 느껴보기도 하고, 냄새도 킁킁 맡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구석에서 얼굴만 한 배를 만지작 거리면서 어른들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배 한 통을 다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배를 하나 다 먹으면 올챙이배는 터질 수도 있다.
배는 왜 배일까, 배를 닮아서 배일까. 내 배랑 이 배랑 똑같이 생겼는데 그래서 배가 좋은가.
요리조리 생각도 해보고, 아령처럼 배를 한 손으로 들어보기도 해 본다.
작년에는 안 되던 게 올해는 된다고 뿌듯도 하다.
기다림 끝에 배 몇 조각을 먹으면 이상하게
볼까지 끈적거렸다.
아삭하고 시원한 달달함에 기분이 좋아지면 화장실에 가서 입 주변을 닦았다.
귀찮으면 휴지로 대충 닦고 하루 종일 덜 닦인 끈적임을 버텨내면 되었다.
배 하나로 한 순간이 온전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다시는 느낄 수 없는
불순물 없이 맑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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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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