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시간 감각

2.3. 크로노스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

by 성효경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다. 시계가 재는 시간. 1분은 60초이고, 1시간은 60분이며, 하루는 24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고, 되돌릴 수 없고, 멈출 수 없다. 출근길의 20분이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신호등과 버스 시간에 맞춰 분 단위로 쪼개지고, 1분이 늦으면 1분만큼의 손해가 생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순간의 밀도로 경험되는 시간. 같은 1시간이라도 무게가 다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을 것이다. 할 말이 많아서 쉬지 않고 떠들었는데,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다. 시계를 보면 두 시간이 지나 있다. 두 시간이라고? 30분쯤 된 줄 알았는데. 그런데 나중에 그날을 돌아보면, 그 두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길고 선명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다른 시간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문제는 현대인의 하루가 거의 전부 크로노스의 방식으로만 경험된다는 것이다. 알람이 하루를 열고, 캘린더가 일정을 쪼개고, 스마트폰이 분 단위로 알림을 보낸다. 하루가 끝나면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왜 시간이 사라지는가

이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현상이다. 1969년 심리학자 로버트 오른스타인(Robert Ornstein)은 '저장 크기 가설'을 제안했다. 사람이 어떤 시간을 되돌아볼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실제 경과한 시간이 아니라 기억에 저장된 정보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같은 길이의 두 구간을 들려주되, 한쪽에는 소리 자극을 적게, 다른 쪽에는 많이 넣었다. 실제로는 같은 시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자극이 많았던 쪽을 더 길었다고 판단했다.

10년 뒤 몬태나 주립대학의 리처드 블록과 마조리 리드(Block & Reed, 1978)의 연구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대학생 128명에게 같은 시간 동안 과제를 주되, 한 그룹에는 한 가지 과제만 시키고, 다른 그룹에는 중간에 과제의 종류를 바꿨다. 실험이 끝난 뒤 "방금 시간이 얼마나 됐다고 느끼는가"라고 물었을 때, 과제가 바뀐 그룹이 시간을 더 길게 추정했다. 실제 시간은 같았지만, 맥락의 변화가 기억을 늘렸고, 기억이 늘어나니 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확인되었다. 2003년 아브니-바바드와 리토프(Avni-Babad & Ritov)는 똑같은 루틴이 반복되는 구간을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그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추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루틴은 기억을 만들지 않고, 기억이 없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출근길, 같은 사무실, 같은 루틴. 한 달이 일주일처럼, 일 년이 석 달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걷기는 기억을 만든다

걷기는 이 얇아진 시간에 두께를 되돌려준다. 차를 타고 출근하면 시속 60km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으면 달라진다. 시속 4km에서는 어제 없던 꽃이 눈에 들어오고, 단골 가게의 간판이 바뀐 것을 알아채고, 골목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발견한다. 같은 거리를 이동해도 뇌에 남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 오른스타인의 가설대로라면, 기억이 촘촘해진 만큼 그 시간은 나중에 더 길게 남는다.

시간이 길게 남으면 하루가 하루의 무게를 갖게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지는 대신, 월요일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봤고, 수요일에는 새로 생긴 카페의 간판을 읽었고, 금요일에는 골목 끝에서 석양을 봤다는 기억이 남는다. 일주일이 일주일만큼의 두께를 가진다. 삶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는 불안은, 결국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는 데서 온다. 걷기는 그 기억을 다시 만들어준다.

특별한 곳에 갈 필요가 없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여는 순간, 크로노스의 시간에 틈이 생기고 카이로스의 시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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