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걸으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타이어로 할 수 있는 일을 4분 안에 최대한 많이 생각해 보세요."
2014년,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심리학과의 매릴리 오펠조와 대니얼 슈워츠는 이 질문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걷기가 창의적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측정한 최초의 연구였다. 운동이 장기적 인지 기능을 보호한다는 연구는 많았지만, 비유산소 수준의 걷기가 아이디어 생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한 연구는 없었다.
연구는 4개의 실험으로 구성되었고, 총 176명의 대학생과 성인이 참여했다. 창의성 측정에는 두 가지 과제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확산적 사고를 측정하는 검사로 사물 하나를 주고 아이디어를 넓게 펼쳐 4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용도를 생각해내도록 했다. 다른 하나는 수렴적 사고를 측정하는 검사로 예를 들면 "cottage, Swiss, cake"라는 세 단어를 보고, 이들 모두와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 "cheese" 를 찾아내도록 했다.
실험 1에서 참가자들은 먼저 앉아서 과제를 수행한 뒤, 트레드밀 위에서 걸으면서 같은 과제를 수행했다. 확산적 사고 점수는 걸을 때 평균 60% 상승했고, 참가자의 81%가 걸을 때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수렴적 사고에서는 23%만이 걸을 때 향상되었다. 걷기는 아이디어를 '넓히는' 사고에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정답을 '좁히는' 사고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실험 2에서는 순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앉기→걷기, 걷기→앉기, 앉기→앉기 세 조건을 비교했다. 이 중 특히 걷기→앉기 조건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걸은 뒤 앉아서 과제를 수행한 경우에 앉기만 한 그룹보다 창의성 점수가 높았다. 걷기의 창의적 효과가 걸음을 멈춘 뒤에도 남은 것이다. 연구진은 이것을 '잔류 창의 효과'라고 불렀다. 만약 걷기가 단순히 심박수를 높여 각성 수준을 올리는 것이라면, 앉는 순간 각성이 떨어지면서 효과도 사라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는 걷기가 일시적 각성이 아니라, 사고가 작동하는 모드 자체를 전환시켰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험 3은 야외 걷기로 확장했고, 야외에서 걸어도 확산적 사고가 높아지는 같은 경향을 나타내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야외 환경이 효과를 높이는데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오사카 대학교 산업과학연구소의 기무라 쓰카사 연구팀이 이 질문을 다뤘다 (Frontiers in Psychology, 2023). 같은 강도의 달리기를 실내 트레드밀과 야외 숲길에서 각각 실시한 뒤 확산적 사고를 측정하면서, 동시에 EEG로 뇌파를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행동 수준의 창의성 점수 자체는 두 조건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지만 뇌파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야외 운동 후 두정-후두엽 영역의 알파파가 실내 운동 후보다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이 효과는 10일간의 실험 기간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알파파 증가는 확산적 사고와 관련된 인지 활동의 활성화를 뜻한다. 야외 환경이 창의적 사고의 '준비 상태'를 더 강하게 활성화시키지만, 그것이 곧바로 점수 차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환경의 효과는 존재하지만, 걷기 자체의 효과만큼 직접적이지는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걷기의 핵심은 야외 환경인가, 걷는 행위 자체인가? 실험 4가 이 질문에 답한다. 네 가지 조건을 비교했다. (1) 실내에서 앉기, (2) 실내 트레드밀에서 걷기(빈 벽을 마주보고), (3) 야외에서 걷기, (4) 야외에서 휠체어에 앉아 이동하기. 휠체어 조건은 "야외 환경의 시각적 자극이 창의성을 높이는 건 아닌가?"라는 가설을 분리하기 위한 설계였다.
네 조건의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실내 앉기가 가장 낮았고, 실내 트레드밀(빈 벽 앞)이 그보다 높았고, 야외 휠체어(걷지 않고 이동만)가 그보다 높았고, 야외 걷기가 가장 높았다. 트레드밀에서 빈 벽을 보며 걸은 사람도 앉아 있는 사람보다 약 2배 많은 창의적 반응을 생성했다. 오펠조 본인도 "야외 걷기가 압도적일 줄 알았는데, 지루한 방 안의 트레드밀에서도 강한 결과가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이 네 조건을 겹쳐 읽으면, 야외라는 환경도 걷기라는 행위도 각각 독립적으로 창의성에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외 휠체어가 실내 앉기보다 높았으니 환경 자체의 효과가 있고, 실내 트레드밀이 실내 앉기보다 높았으니 걷기 자체의 효과가 있다. 다만 기여의 크기가 달랐다. 실내 트레드밀(빈 벽 앞에서 걷기)의 창의성 향상 폭이, 야외 휠체어(걷지 않고 야외에서 이동)의 향상 폭보다 컸다. 걷기 없이 환경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환경 없이 걷기만으로도 효과는 강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연구팀이 이 구도를 한 단계 더 밀고 나갔다(Thinking Skills and Creativity, 2020). 오펠조의 휠체어 조건에서 창의성이 올라간 이유가 야외 환경이 아니라 '시각적 이동 지각'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32명의 참가자가 가상현실 속 기차에 앉아 터널을 지나갔다. 절반은 기차가 달리는 영상을 봤고, 절반은 정지된 기차에 앉아 있었다. 실제로 걷지 않았고,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움직이는 기차에 앉은 참가자의 확산적 사고 점수가 더 높았다. 근육의 수축도, 심박수 상승도, 호흡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시각적 경험만으로 아이디어 생성이 촉진된 것이다.
이 구도는 이후 여러 연구에서 보강되었다. 중국 서남대학교와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교의 공동 연구팀은 앉기, 서기, 걷기 세 조건에서 확산적 사고를 비교했다. 서기만으로도 앉기보다 확산적 사고가 향상되었고, 걷기는 서기보다 더 높았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이렇게 해석했다. 뇌에는 엉뚱한 생각을 걸러내는 필터가 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관계없는 생각을 차단하고 정답 하나로 좁혀가야 하니까 이 필터가 강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디어를 넓게 펼쳐야 할 때는, 이 필터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걷기가 뇌의 자원 일부를 가져가면서, 이 필터가 느슨해지고, 평소에는 차단됐을 연결들이 통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확정된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오펠조의 실험 결과와 잘 맞아떨어지는 해석이다. (Frontiers in Psychology, 2017).
2024년, 일본 쓰쿠바 대학교의 총 첸은 신체 활동 유형별 창의성 효과를 정리한 포괄적 리뷰를 발표했다 (Discover Psychology, 2024). 이 리뷰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속도의 걷기가 확산적 사고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중강도 유산소 운동과 춤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보고되었지만, 걷기는 이 중에서 접근 장벽이 가장 낮다. 춤이나 달리기와 달리, 걷기는 체력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특별한 공간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으며, 일상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걷기는 수학 공식을 외워 주지 않고, 물리 문제의 풀이를 갑자기 떠오르게 하지도 않는다. 그건 수렴적 사고의 영역이고, 오펠조의 데이터가 보여준 것처럼 걷기의 효과가 약한 영역이다. 걷기가 돕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접근법, 한 번도 연결해 보지 않은 두 개의 개념, 머릿속에 있었지만 꺼내 보지 않은 가능성. 걷기는 그 후보의 수를 늘린다.
이 구분은 실용적으로도 중요하다. 시험 공부처럼 정해진 답을 정확히 기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걷기의 창의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에세이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연구 방향을 잡아야 할 때, 프레젠테이션 구조를 구상해야 할 때, 기획안의 첫 문장을 써야 할 때. 이런 상황에서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는 것은 오히려 사고를 좁힌다. 하나의 방향에 고정된 주의가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걷기는 그 필터를 느슨하게 만들어 사고가 여러 방향으로 퍼질 수 있게 한다.
책상 앞에서 두 시간째 막혀 있던 문제가, 10분 산책 후에 풀리는 경험. 그것은 산책이 답을 줘서가 아니다. 산책이 사고의 폭을 넓혀 놓았기 때문에, 책상에 돌아왔을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경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걷기는 창의성을 '만들어 주는' 행위가 아니라, 창의성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행위다. 그리고 그 조건은,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강하게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