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수업이 된 교실

3.2. 걷기를 시간표에 넣은 나라들

by 성효경

걸으면서 가르치는 교육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기원전 335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외곽의 뤼케이온에 학교를 세웠다. 그는 교실에 앉아 강의하는 대신, 지붕이 덮인 산책로를 제자들과 걸으며 토론하고 가르쳤다. 이 학파의 이름이 '페리파토스', 그리스어로 '걸어 다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걷기와 사유의 결합을 교육 방식으로 공식화한 최초의 사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걷기는 운동이 아니었다. 생각이 흘러가는 리듬이었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통로였다.

2,400년이 지났다. 슈미트-카소프가 트레드밀 위에서 걸으며 단어를 외우는 실험으로 확인한 원리, 산책 수준의 걷기가 학습 내용의 부호화를 돕는다는 발견을 실제 교실에 적용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미국의 워킹 클래스룸(The Walking Classroom)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한 교사의 관찰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메리 스크로그스 초등학교에서 15년간 5학년을 가르친 로라 펜은, 신체 활동량이 많은 학생일수록 학업 성취가 높다는 패턴을 반복적으로 목격했다. 동시에 교육과정은 계속 확대되고, 체육 시간과 쉬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수업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움직이게 할 방법이 없을까." 2010년, 펜은 자기 집 부엌에서 첫 교육용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3~8학년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 20분간 빠르게 걸으면서 이어폰으로 팟캐스트를 듣고, 교실에 돌아와 퀴즈와 토론으로 내용을 정리하도록 했다. 국어, 사회, 과학 등 정규 교과 내용에 맞춰 제작된 팟캐스트를 걸으며 듣는다. 수업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걷기 자체가 수업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캠퍼스의 에리앤 웨이트 교수 연구팀이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했다. 4~5학년 학생 319명, 9개 교실을 대상으로, 같은 팟캐스트를 (1) 걸으면서 듣는 조건과 (2) 앉아서 듣는 조건으로 나눠 학습량을 비교했다. 팟캐스트 내용은 비유법, 관용어, 화산, 토네이도, 마틴 루터 킹, 로자 파크스 등이었고, 직후 10문항 퀴즈와 1주일 뒤 퀴즈로 단기·장기 기억을 모두 측정했다. 결과는 걸으면서 들은 그룹이 앉아서 들은 그룹보다 단기·장기 기억 모두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걷기 직후 실시한 3분 곱셈 테스트에서도 정보 처리 속도가 더 빨랐다(걷기 평균 49.5점 vs 앉기 46.9점). 긍정 정서 역시 걷기 조건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Journal of Physical Activity and Health, 2021).

주목할 점은 이 연구가 무료 급식 대상 비율 평균 81%에 달하는 고빈곤 학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개 학교는 99%가 무료 급식 대상이었고, 학년말 읽기 시험 통과율은 28~52%에 불과했다. 프로그램을 도입한 교사들은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팟캐스트로 같은 내용을 들으면 토론에 자신 있게 참여한다"고 보고했다. 펜의 교실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50개 주로 확산되었다.

다만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워킹 클래스룸은 2011년에 시작되어 15년째 운영 중이지만, 학술적으로 검증된 연구는 2021년 웨이트 연구팀의 논문 하나뿐이다. 이 연구도 오크 재단의 외부 자금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1주일 뒤 퀴즈 점수까지만 추적했을 뿐 한 학기 이상의 장기 성적 변화를 측정하지는 않았다. 후속 연구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워킹 클래스룸은 대학 연구팀이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장 교사들이 "아이들이 집중을 더 잘 한다"고 체감하며 입소문으로 퍼졌지, 학술적 검증 절차를 거쳐 확산된 것이 아니다. 2012~2013년 교사 설문에서는 100%가 "프로그램 후 학생들의 행동과 참여도가 개선되었다"고 응답했지만, 이는 학술 논문이 아니라 내부 조사다. 걷기가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원리는 앞 장에서 살펴본 실험들로 뒷받침되지만, 그 원리가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어떤 규모와 지속성으로 작동하는지는 앞으로 더 확인이 필요하다.




걸으면서 배우는 방식은 초등학교에만 통하는 걸까. 2021년 영국의 머피와 매니언은 임상 의학 교육에 아리스토텔레스식 '페리파토스 교수법'을 도입한 파일럿 연구를 발표했다. 의대생들이 병동에서 환자를 본 뒤, 교실로 돌아가는 대신 복도와 캠퍼스를 10분간 걸으면서 방금 본 환자 사례를 토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고, 질문을 나눴다. 56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7점, 세션당 평균 1,420보를 걸었다 (British Journal of Hospital Medicine, 2021). 다만 이 연구는 만족도 조사일 뿐, '걸으면서 토론'과 '앉아서 토론'의 학습 효과를 직접 비교한 것은 아니다. 걷기 수업이 앉아서 하는 수업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시사하는 점은 있다. 학생들의 반응 중 가장 많이 나온 말이 "걸으면서 이야기하니 질문이 더 자연스럽게 나온다"였다. 연구진은 걷기의 비형식적 분위기가 학생과 교수 사이의 위계를 낮추고, 대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해석했다. 교실에서는 손을 들어야 질문할 수 있지만, 나란히 걸으면서는 대화가 된다.

이러한 시도들의 한계를 정면으로 인식한 프로젝트가 있다. 2025년, 스웨덴 외레브로 대학교의 라스무스 칼란데르 연구팀이 발표한 '워킹 스쿨'이다. 연구팀은 기존 접근법의 문제를 명확히 진단한다. 첫째, 학교에서의 신체 활동 증진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개인의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학교 구조와 문화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 더 움직이라고 권장하는 것은 "수업 중에는 여전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워킹 클래스룸 같은 프로그램은 사전 녹음된 팟캐스트만 가능하기 때문에 교사-학생 간 실시간 소통이 제한적이다.

워킹 스쿨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넘으려 한다. 모든 과목의 교사가, 체육 교사만이 아니라 국어, 수학, 과학 교사까지, 공동 책임으로 수업의 일부를 걸으면서 진행한다.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걷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직접 걸으면서 가르치고, 학생들이 걸으면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구조다. 연구팀이 제시한 원칙은 다섯 가지다. (1) 교사와 학생 모두를 포함할 것, (2) 교실을 확장하여 신체 활동을 모든 교사의 공동 책임으로 만들 것, (3) 좌식 시간을 줄이되 수업 시간을 잃지 않을 것, (4) 야외 환경을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것, (5) 학교 문화의 일부가 될 것.

아직 프로토콜 단계라 결과 데이터는 없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걸으면서 배우기"를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 자체의 변화로 설계하려 했다는 점이다. 펜이 자기 교실에서 시작한 실험이, 대학 연구팀의 학교 전체 재설계로 진화한 셈이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수업 중 신체 활동을 학습과 통합하려는 시도는 2020년대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체 활동 기반 수업 (Physically Active Learning, PAL)'이라 불리는 이 접근법은 체육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어·수학·과학 수업 자체에 걷기와 움직임을 녹여 넣는 방식이다.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의 베이컨과 로드는 이 접근법의 효과를 교차 설계로 검증했다. 같은 학생들이 1주일은 신체 활동을 통합한 수업(PAL)을, 다른 1주일은 일반 좌식 수업을 받았다. PAL 수업에서 학생들의 주요 움직임 중 78%가 걷기 또는 달리기였고, 대부분 모둠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PAL 주간에 학생들의 주간 걸음 수는 약 19만보로, 좌식 주간의 약 15만보보다 높았고, 수업 중 과제 집중 시간은 PAL 97%, 좌식 87%로 10%p 차이가 났다. 그리고 두 조건에서 학업 성취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Health Education Research, 2021).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움직이면서 배워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으며, 집중력은 오히려 올라간다.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걷게 하면 학습이 방해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다.

노르웨이에서는 더 큰 규모의 실험이 진행 중이다. '건강 지향 교육 프로젝트(HOPP)'는 초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 수년간 신체 활동 통합 수업을 실시하고, 장기적 학업 성취 변화를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다 (Frontiers in Education, 2025). 워킹 클래스룸의 1주일 퀴즈 추적이나 영국 PAL의 2주 교차 설계로는 답할 수 없었던 질문, "이 방식이 학기 단위, 학년 단위로도 효과가 유지되는가"에 답하려는 시도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존재 자체가 "걸으면서 배우기"가 일회성 실험에서 교육 시스템의 설계 문제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산책로에서 시작된 원리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초등학교 캠퍼스에서 검증되고, 영국 의대 복도에서 시도되고, 스웨덴에서 학교 시스템 차원으로 설계되고 있다. 아직 대규모 종단 연구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은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 걷기를 시간표에 넣는 것은 수업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수업이 더 잘 작동하게 만드는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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