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중 배운 것 1.
엄마는 발목골절로 수술한 지 2주 만에 집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건 치매약간 + 파킨슨 투병 중인 아빠. (내가 볼 때 두 분은 사랑은커녕, 비즈니스 관계다)
때문에 누군가 두 분의 돌봄을 진행해야 했는데, 평소 성향이나 지금 직업적 포지션(백수)으로 볼 때 그 역할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랄까. 나의 심정은 전쟁지역으로 출정하는 UN 회원국가 가 우려하는 것, 딱 그것이었다.
최대한 자국의 희생 없이 최선의 평화(보건) 유지를 도모한다
하지만 내 우려(엄마 퇴원 전후의 집중적인 부모님 댁 방문은 제외)와는 달리, 체계가 잡히고 있어 다행인데, 최근엔 내가 주중 한 두 번 방문하고, 주말엔 큰언니가 한번 방문하는 식이다.
나의 방문일에는 내가 사는 동네인 관악구 낙성대 지역의 특산물 (가령, 토요일마다 오는 뻥튀기, 시장 슈퍼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그릭요거트 하드, 유명한 김밥집의 김밥이나 제철과일 약간, 찌개거리 등등)을 싸들고 가서 엄마가 휠체어 위에서 지휘하는 대로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주요 업무이다.
어떤 때는 부모님 댁에 있는 재료로 만들 때도 있고, 내가 가져간 재료로 끓여낼 때도 있다. 그리고 그날은 전 날 엄마가 아빠에게 무와 콩나물을 사 오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두부 외엔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는데, 콩나물 국은 끓여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먹을 요량이면, 난 콩나물 같은 건 사지 않았었다. 왜냐면? 잘 모르겠다. 콩나물 국은 간편한 한 끼 요리에는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콩나물 국이 의미하는 것은 메인이 따로 있다는 소린데, 그건 내 기준에 너무 럭셔리했거나 너무 슴슴한 그 국이 한국에서 혼자 살며 해 먹기에는 화끈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나 뭔가 노력 대비 맥 빠진 음식이라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단짠이거나 단백질을 외치는 사회이긴 하니까 말이다...
긴장도 잠시, 먼저 여러 번에 걸쳐 콩나물을 씻고, 그다음 무를 씻어 요청되는 크기대로 잘랐다. 싱싱한 무 조각을 나눠먹는 건 기본이다. (엄마는 한 번 더 요청했다)
이 부분이 헷갈리던 부분인데, 무, 콩나물을 찬 물과 다 함께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핵심은 뚜껑을 처음부터 덮어서 시작할 것인지 열고 시작할 것인지 굳은 심지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게 헷갈려서 안 끓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중간에 뚜껑을 열면 비린내가 난다
엄마는 닫고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그러면 콩나물 국의 정수가 하나도 빠져나가지 않기에 더 맛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멸치액젓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두부와 파마늘을 넣으면 끝이다. 앗참, 그릇에 담은 뜨거운 콩나물 국에 약간 뿌리는 이것을 잊지 말자.
참기름
아주 약간인데, 이게 킥이다.
그리고 그날의 콩나물 국은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