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칼

by 큐인



시계 초침이 유난히 느리게 움직이는 밤이었다.

온몸이 굳어버리는 공포는, 호흡하는 방법조차도 까먹게 하는.

그런 밤이었다.



며칠째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내가 정체 모를 소리를 들으며 고통받는 밤은. 나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공포와 매일 같이 싸웠다. 그리고 번번이 흰 깃발을 흔들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는, 그 공포를 감당할 수도 없었고. 감당할 마음조차 없었으며, 제발 사라져달라고 빌기만 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집이 떠나가라 울며불며 통곡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그것만을 바라던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평범한 날이었다. 소리에 시달려 괴로워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몰랐던 밤. 해가 뜨고 나서야 일어나서 학교에 갔고, 수업을 듣고, 하교했다. 똑같았다. 매일 밤 공포에 휩싸이는 것마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지? 익숙해지긴커녕, 날마다 덮쳐오는 공포가 두려웠고, 무서웠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둠이 드리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을 밤이 아니었다. 힘없이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불을 켜고 누워야겠다. 잠을 자더라도 불을 켜고 잘 생각이었다. 밝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전기세를 아끼려 했던 부모님의 절약 정신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눈치가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밝은 방 안에서 잘 생각을 안 해 봤던 건 아니지만, 그때야 실행에 옮긴 것은 눈치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기분이 싸하고, 느낌이 안 좋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굳이 강조하려 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면, 절대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사람의 직감은 생각 이상으로 정확할 때가 있다. 그것은 본능이고, 나를 위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여전히 같은 의견이지만. 사실 8살 아이의 머릿속에는 ‘아 오늘따라 더 무섭네. 불 켜야겠다…” 정도였다. 다만 그것이 감이 좋았던 것인 줄 몰랐을 뿐.


그래도 불을 켜고 잔다는 게 생각보다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었나 보다. 나는 아주 다행히도, 새벽 2시 이전에 잠들 수 있었다. 분명히 일찍 잠이 들었고, 어쩌면 꿈을 꿨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잘 자고 있었다. 아니, 잘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중력이 발밑으로 쏠리는 감각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언가 이상했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감각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고, 몸의 불편함을 감지하자 뇌가 먼저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눈을 감은 채로 정신만 잠에서 깬 것이었을까. 무서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눈 뜰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나는 이상함을 느낀 상태로도 계속 눈을 감고 있었고, 잠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정신으로 천천히 생각했다. 왜 중력이 느껴지는지를. 발 쪽으로 무게감이 실리는 것 같다. 왜일까. 나는 침대에서 누워서 자고 있는데 왜 무게감이 느껴지지? 마치 서 있는 것처럼.



'서 있는 것처럼?'



천천히 굴러가던 머리가 생각을 멈췄다. 반사적으로 눈을 부릅떴고, 이내 다가오는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자세로 자는 편이었다. 그러니 눈을 뜨면 당연하게 내 방 천장이 보여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주방이 보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주방에 놓여 있는 정수기. 불이 다 꺼진 어둠 속에서 온수 물의 빨간 불빛이 눈동자에 비쳤다. 누워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나는, 불편함을 느꼈던 예상대로 별안간 우두커니 서 있던 것이었다. 폭풍 전야와 같은 긴장감에 마른침조차 삼켜지지 않았다. 차마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시커먼 공간에서 형형히 빛나고 있을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내 방이 아니다. 내가 누워있지 않아. 왜 주방 앞이지? 무서움보다도 충격이 앞섰던 나는 차근차근 생각을 이어 나가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그제야 잘못됐음을 강하게 인지했다.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눈을 뜨면 보이는 주방. 그 앞에 배치된 식탁. 그래, 식탁. 나는 주방과 조금의 거리를 두고 식탁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정확히, 내가 새벽마다 가장 무서워했던 거실의 정중앙 자리였다. 손끝이 부르르 떨려왔다. 얼어붙은 몸은 움직일 생각도 못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오로지 눈동자만을 바쁘게 굴렸다. 천장, 베란다, 주방 옆 창고, 소파 밑, 냉장고 옆. 짙은 어둠에 적응한 눈 때문인지, 베란다 밖에서 스며들어 오는 옅은 가로등 불빛 덕인지. 어느 정도 내부를 살필 수 있었지만,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서 있지 않은가. 방 안 침대 위에서 편하게 누워 자고 있을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거실에, 그것도 정중앙 자리에 꼿꼿이 서 있다. 왜? 어떻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눈을 한 번 꾹 감고 울컥거리는 감정을 삼켜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사람은 너무 놀라면 소리도 안 나온다는 말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섣불리 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 여태까지 소리에 시달렸던 새벽과는 전혀 다른 공포였다. 게다가 그 시각 거실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나 혼자만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게 더 미칠 것 같았다. 얼마나 조용했으면, 째깍대는 시계 초침 소리가 그 어떤 때보다 크게 들려왔다. 꾹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계속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난 움직여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을 감으면서 자연스레 숙였던 고개를 따라 내려간 시야에서 발견했다.



식탁 위에 정갈히 놓인 식칼 하나를.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식칼은, 잘 갈려져 있어 그 끝이 아주 뾰족한 칼이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내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잠에서 깨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공포는, 날마다 그 강도가 심해졌었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