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에 예민한 엄마의 뒤척이는 움직임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었다. 미간 사이가 좁혀지는 것까지,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딱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안심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까. 그러다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 엄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잘은 모르겠지만, 꽤 놀란 눈치였던 것 같다. 그때도 난 여전히 ‘엄마가 놀랐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놀랐네, 그럴 수 있지. 정도로 말이다.
“…하 깜짝이야. 왜 그러고 서 있는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엄마가 잠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제야 대답할 수 있었다. 너무 무섭다고. 당장 자야 할 새벽이라 긴 설명은 못 한 채, 무섭다고만 말했다. 무서워서 찾아왔다고. 그렇게 나는 슬며시 자리를 내어 준 엄마의 옆에 누울 수 있었다. 누워서도 불안했던 것 같다. 언제 또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고, 잠에서 깬 엄마가 나보다 먼저 잠들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한 상태로 잠을 청했다.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눈 위를 간지럽혔다. 천천히 눈을 뜨면 안방 침대 위의 이불자락이 손끝을 스쳤다. 아침이었다. 그날은 주말이었다. 다음 날까지 학교에 안 갔던 걸 보면 토요일 아침. 날이 밝을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며 방 밖으로 나가자 엄마가 잘 잤냐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무척이나 평화롭고, 별걱정 없는 어린아이의 주말.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마시려고 할 때, 엄마가 내게 질문했었다. 새벽에는 왜 그랬냐고. 나는 물을 마시다 말고 가만히 엄마를 응시했다. 무슨 질문이냐는 듯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아이의 단순한 사고회로였던 것일까. 야심한 시각, 내가 안방에 찾아가 한참 동안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봤던 일은, 엄마 입으로 상세히 전해 듣고 나서야 퍼뜩 떠올랐다. 그때는 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새벽마다 무슨 소리가 들렸고, 그게 어떤 소리였는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분명히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 등.
제법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에서는 내가 어리고 여리기만 한 자식이었고, 상상력이 풍부하면서 겁이 많아 보였을 뿐이었나 보다. 그게 아니면, 햇빛이 집 안을 가득 비추고 있는 시간대라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던 내 목소리에서 불안함이 덜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말을 들은 엄마가 당황하거나 놀랄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질문을 반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기대가 무색할 만큼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고,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안일했다.
“네가 겁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일찍일찍 자면 된다. 알겠지?”
부산 사람인 엄마의 사투리 섞인 말투에서는, 다정이 묻어나왔다. 겁먹은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켜 줄 생각이었겠지. 단순히 겁을 먹은 게 아니었던 나는 진짜라며 두어 번 더 강조해 봤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래서 설명을 포기했다. 겁 많은 아이 취급이야 소심했던 나에겐 익숙했고, 더 말한다고 한들 달라질 게 없었다. 8살 아이의 말에 담긴 힘은 그 정도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주말의 일상을 보냈던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또다시 밤이 찾아왔다. 자는 걸 좋아했지만, 혼자 방에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안방에서 같이 자면 안 되겠냐고 질문했던 것 같다. 돌아온 대답은 “혼자 자는 것도 연습하고 버릇 들여야지.” 였을 것이다. 내가 힘없이 방으로 들어갔으니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못하는 부모님께 더 이상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에는 원망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나이에는 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고, 나는 늘 상상을 자주 해서 정말 몹쓸 상상력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몇 번이고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다른 소리가 겹쳐 들리기 전까지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 잠을 자겠다고 억지로 눈을 감고 애를 썼다. 결과는 무참히 실패. 시간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흘러갔고, 결국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2시에서 3시 사이.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마가 낀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닌 이상 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미치도록 억울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잠을 자겠다고 노력했지만, 물거품으로 돌아간 노력은 나를 비웃는 것처럼 일정 시간이 닥쳐오자, 희미하던 잠과 함께 달아났다. 지레 겁먹은 탓에 슬쩍 존재감을 드러내려던 잠이 완전히 깬 것이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끝에 기어코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지나치지 않고 귓가를 찌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을 것이다. 절대 눈을 뜨고 싶지 않았고, 그러지 않으려 꿋꿋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물소리에 이어, 다른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맨발이 마룻바닥과 맞닿아 생긴 쩌적거리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애써 무시하려 한 행동이 우습다는 듯이 더 아찔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진득한 맨발로 마룻바닥 위를 걸으면 생기는 소리는, 아마 무슨 소리인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발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무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무서워도 꾹 참고 견디면 지나갈 시간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혼자 견뎌보려 다짐의 다짐을 한 아이에게 더 큰 공포가 덮쳐올 뿐이었다. 놀란 마음에 눈을 번뜩이며 떴다가, 금세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민에 빠졌다. 나는 저 소리가 더 이상 가족이 내는 소리가 아님을 안다. 그러니 이번에도 분명히 가족의 소리가 아닐 것이다. 이날은 저 생각이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이 새벽에 설거지할 리도 없고, 싱크대 수돗물을 틀 리도 없다는 것은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알고 있었다. 그럼 맨발로 소름 끼치는 발소리를 내며 거실을 한 바퀴, 두 바퀴 천천히 걷는 일은? 당연히 없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말이다. 5분에서 10분 정도 뒤집어쓴 이불 밑에서 눈을 꾹 감고 벌벌 떨었던 것 같다.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버틸 심산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애당초 5분에서 10분 정도만 들릴 소리였다면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았겠지.
발소리는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계속해서 마룻바닥 위로 걷는 소리를 내며 거실을 빙빙 돌았다. 분명히 그런 소리였다. 나는 고심 끝에 결정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는 못 잔다. 방문 너머의 존재를 확인할 깡이나 용기는 없었지만, 나는 안방으로 가야만 했다. 도저히 혼자 버틸 용기가 없어서, 방 밖으로 뛰어나가 안방으로 갈 용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침대에서 벗어나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내가 정말 눈을 안 뜰 수 있겠지. 혹시라도 뜨게 되면? 이상한 게 보이면 어쩌지? 그냥 하지 말까? 무섭다. 싫어. 자고 싶다. 안 보고 싶어. 무서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내 나는 문고리를 휘어잡았고, 눈을 아주 꽉 감은 상태로 안방으로 뛰어가서 방문을 여닫았다. 글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겨우 한 줄인 이 시간은, 실제로도 매우 짧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 떨리는 시간이었음에도.
그런데 안방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문밖에서 소리가 이어지든, 아니든. 또 어제처럼 급격히 안정감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빠르게 문을 여닫을 때 잠에서 깨지 못한 부모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와 똑같다. 곤히 잠든 두 얼굴. 필요 이상으로 높이 뛰던 심박수가 가라앉는 느낌. 정말 놀랍도록 금방 안정감을 되찾았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을 감고 안방으로 뛰어왔던 게 오히려 이상했다고 느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나는 어제와 같이, 조용히 침대 프레임을 따라 빙 둘러 걸음을 옮겼다. 느리게 옮긴 걸음은 그 누구도 깨지 않을 정도로 적막만을 유지했고, 나는 또다시 우두커니 선 상태로 엄마를 내려다봤다. 나의 안정감을 위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확실할까. 난 대체 왜 그랬지. 라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였다면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섭다는 이유로 정해진 시간마다, 마치 몰래 숨어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히 다가와 내려다보고 있는 자식이라니. 소름 끼칠 테니까. 놀라운 건 엄마는 내가 왔을 때 조금 늦게 눈을 뜬 적이 있을지언정, 단 한 번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매번 나의 인기척에 눈을 뜨고, 매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을 것이다. 다 크고 나서 든 생각은, 편안히 잠자리에 든 부모님을 깨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어렴풋이,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우는 행위에 미안함을 품고 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했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엄마의 시선에는 말로 못다 할 만큼 기이했을 것이다. 머리가 좀 더 커지고 난 후 들은 말이었다.
새벽마다 찾아왔던 나의 얼굴과 마주할 때면, 얘가 정말 왜 이러나 싶어질 정도로 눈에 초점을 잃은 채 그저 멍하니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눈을 제대로 깜빡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고 들었다. 나는 대체 안방으로 가서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