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식칼을 보자마자 처음 한 생각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왜 여기 나와 있지? 항상 날카로운 물건을 조심히 다루던 엄마가 꺼내놓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 왜 여기에? 뭐지? 애당초 나는 왜 서 있지, 그것도 식탁 앞에? 칼이 있잖아. 난 이 앞에서 뭘 했지? 내가 꺼냈나? 아닌데, 아니어야 하는데? 난 아닐 텐데? 복잡한 생각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윽고 속이 메스꺼운 느낌을 받았다. 토할 것 같아. 5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나는, 제일 먼저 한 행동이 식칼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에서 치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끝이 뾰족한 날붙이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그랬다. 섬뜩했고, 머리가 이상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잔뜩 겁에 질린 상태로 급하게 칼집을 찾아 식칼을 끼워놓고는 수납장의 문을 닫았다. 이게 뭐야, 내가 뭘 하는 거지? 새벽의 거실을 무서워하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실의 정중앙에 서 있는 것도 모자라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식칼을 정리하는 행위가 미치도록 기이했다. 꼭 나라는 사람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다리가 자꾸만 후들거려서 쉽사리 일어날 수 없었다. 얼른 일어나서 내 방이든 안방이든 뛰어가고 싶은데 내 몸이 마음 같지 않아서, 아무도 없는 거실 내부를 계속 흘끔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을 때였다. 싱크대 바로 밑에 있는 수납장 앞, 쭈그려 앉아 있던 내 머리 위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 달그락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였다. 내 위? 내 뒤? 수납장 문에 붙어 앉아 있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어떻게 나는 거지? 이 생각들은 아마 단 2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밤 들어왔던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자마자 안방을 향해 튀어 나갔으니까. 오로지 안방의 방문만을 보고 달려갔다. 말고는 어떤 곳으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죽어도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눈을 질끈 감고 안방의 방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데.
철커덕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급하게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열리긴커녕 문고리가 다 돌아가지도 않았다. 잠긴 것이다. 안방 문이 잠겨있었다. 왜? 당연하게 열릴 줄 알았던 문이 잠겨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문고리를 계속해서 돌렸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열릴 때까지. 잠겨있는 것을 알아도 당황을 금치 못한 어린아이는 포기를 몰랐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 무엇도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감았던 눈을 뜨고도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이라는 게, 아무리 정면을 보고 있다고 해도 좌우로 시야가 트여있지 않은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였다. 어두컴컴한 거실이.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지만, 소리는 내가 눈을 뜨고 나서부터 지나칠 정도로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 수돗물 소리, 물건을 옮기는 소리까지 모든 게 귓바퀴를 통해 고막을 찔러왔다. 시끄러운 소리와 두려움에 뇌가 터질 것 같았다. 소리를 막아보려 한 손으로는 귀를 막고, 다른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렇게 잡고 미친 듯이 돌리는데도 열리지 않는 문을 보고 울컥거리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나를 괴롭히는 소리가 존재했다. 바로 옆, 바로 뒤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데, 새벽의 유일한 도피처인 안방으로 가는 문이 열리질 않는다.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거의 날마다 안방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문을 왜 잠갔지? 왜? 어째서? 너무 무서워, 문 좀 열어 줘. 공포심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오로지 안방 문이 열리기만 바라는 마음을 읊조렸지만,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울음소리뿐이었다. 분위기와 소리에 겁먹어 벙긋하지도 못했던 입은 한 번 소리 내 울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평정심과 참을성을 잃은 아이는 목 놓아 울어젖히며 방문을 쾅쾅 두드리고, 심지어는 발로 차기까지 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악을 썼다.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니, 그제야 방 안에서 엄마와 아빠의 말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고 문이 열렸다. 나는 문이 열리면서 문틈으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밤마다 내가 찾아오는 걸 알고 있지 않냐며, 왜 다 알면서 문을 잠갔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미 눈물 콧물로 범벅된 내 얼굴을 본 부모님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그저 문을 왜 잠갔냐는 말밖에 못 했다. 엄마는 목 놓아 우는 나를 안아 달랬고, 아빠는 방에서 나와 거실을 둘러보았었다. 우느라 말도 제대로 못 잇던 내가, 겨우겨우 끊어가며 말할 때도 똑같이 되물었다. 문 왜 잠갔냐고, 잠그지 말라고.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보더니 내 질문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아빠는 아니라고 대답했고, 엄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누가 잠근 건데? 나는 문이 분명히 잠겨 있었다며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곤란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달래기에 바빴고, 그날은 그렇게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서러움이 폭발했던 아이의 눈물이 그칠 때쯤. 이제 그만 울고 같이 들어가서 마저 자고 일어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뉘면서 방 안의 시계를 마주 보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오전 3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나는 과연 몇 시부터, 거실에 서 있었을까. 확실한 것은 2시에서 3시 사이, 문제의 시간에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들은 말이지만, 내가 불을 켜고 잤었던 방에 불이 꺼져있던 것은 잠든 나를 확인한 아빠가 끈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방문은 그 누구도 잠그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