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아버지를 안 지 27년째다. 아빠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큰 화물차를 운전하는 그의 뒷모습이다. 아빠는 운송 일을 하는 자영업 기사다. 내가 타고 있던 화물차는 물류를 싣고 대리점을 향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 차를 '큰 차'라고 불렀다. 평상시에 타는 가정용 SUV는 자연스럽게 '작은 차'가 됐다. 아빠의 삶은 일반적인 직장인의 리듬과 다르게 움직였다. 오후에 출근해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 없이 일주일 내내 핸들을 잡는다. 59세가 된 올해가 되어서야 토요일 하루, 고정적인 휴일을 갖게 되었다. 새벽에 들어와 불충분한 수면을 버티며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켜야하는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매 끼니마다 반주를 채우시던 아빠는 술이 조금 들어가고 나면 늘 정직함을 강조했다. 어른들의 '취중 레퍼토리'라는게 있지 않은가. "어떤 순간에도 거짓말은 하면 안돼, 아빠는 거짓말을 제일 싫어해." 이뿐만 아니라 성실함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인지시켜주었다.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 아빠는 "우리 집은 성실하게 살자야" 라고 말해주셨다.
떵떵거리며 형편은 아니었지만, 근면 성실한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평균의 삶 속에서 무난히 자랐다. 어릴적부터 심어진 바른 인성은 올바른 방향으로 자랄 수 있는 큰 자양분이 되었다.이를 위해 견디고 참고 포기하며 가끔은 기뻤을 아빠의 세월을 떠올리면 고맙고도 미안하다. 그러나 절망스럽게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는가?
부모에 대한 감정은 마땅히 그러하고, 그래야하는 도리로 여기며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를 볼 때마다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를 괴롭게 했다. 천륜처럼 믿음으로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은 안 된다"고 배운 나는 내 마음을 속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 뒤에서 날 힘껏 밀어주셨다. 바르게 자라도록,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도록.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내게 진심으로 필요했던 것들은 생략됐다. "밥 잘 먹고 다녀", "돈 부족하면 얘기해" 같은 말은 나를 보호했지만 나를 보살피진 못했다. 불안한 내 마음에 대해, 나의 꿈에 대해, 내 일상 속 감정에 대한 대화는 부재했다. 사랑이 피어날 토양은 그렇게 말라갔다. 밀어주는 힘 덕에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곁에 있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실까. 아빠도 그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아버지를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난 그를 존경한다. 단지 혈연이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사실과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게 얼마나 일인지를 마음으로 느껴본다. 채워지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을 허공에 붙잡으며, 이 글에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