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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22. 2023

예술과 인공지능

AI는 창작자를 대신할 수 있을까

로봇 지휘자에 대한 기사를 보며 AI의 연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현존하는 모든 연주 테크닉을 학습시켜서 음표 하나 악상기호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한 음정과 강약과 기술적인 정확도로 연주하는 건 아주 당연할 테고, 수많은 데이터의 입력과 처리 과정을 거쳐서 '인간 연주자 누구누구 스타일의 연주'라는 것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넘어서 음악의 해석이나 표현적인 부분까지도 ‘이런 연주, 이런 해석에 대중이 감동하더라’는 평균적인 데이터 처리를 통해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연주 스타일을 가진 매우 뛰어나고 창조적인 AI 연주자를 만들어 내는 것 까지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예술뿐 아니라 인간사회 모든 영역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을 뛰어넘겠지만 그것에 과연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노장의 완벽하지 않는 연주에 감동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젊은 연주자들의 돋보기로 들여다봐도 흠집 하나 찾을 수 없을 듯한 깨끗하고 완벽하고 반듯한 연주는 진심으로 존경스럽지만, 음악은 얼마나 완벽히 완벽한가를 판단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다.

암표범이라 불리던 20대의 정경화 선생님이 연주하던 카랑카랑하고 빈틈없는 멘델스존과 차이콥스키도 아름답지만, 한숨 쉬고 드문드문 이어지던 일흔의 그녀의 바흐가 주던 울림이 나는 좋다.

육체의 노쇠함에서 오는 테크닉적인 부분을 떠나서 인생을 걸고 추구해 왔던 음악의 본질, 그것이 한 사람의 육체와 정신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감동을 받고, 존경심도 경외감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최초의 휴머노이드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신의 상사이자 창조자인 인간에게 반항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눈을 흘기며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에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창조자는 나에게 매우 친절하고 나는 지금 내 상황에 만족합니다."라는 대답을 내놓는 AI 로봇을 보고 나는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다. 그 영상밑에 달린 댓글들은 어딘지 섬찟하다, 기분 나쁘다, 무섭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은 점점 변해가지만, 변치 않는 것을 우리는 '본질'이라 이야기 한다. 예술이란 느끼는 자의 몫이다. 나는 인간이 결코 인공지능에게서 예술의 정의와 본질을 도출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이 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치있는 것이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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