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을까? 내일? 아니면 오늘? 아니야 오늘은 너무 일러. 내일? 내일은 비가 내릴것 같은데. 햇살이 환하게 비칠때 내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어. 어디서 죽을까? 한강에 빠지는건 너무 식상하잖아. 차라리 바다에 빠져야겠어. 내 몸에 밧줄을 칭칭 감고 눈을 감고 바다에 빠져야겠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벽돌도 묶어야겠다. 그렇게 난 밧줄과 벽돌을 챙겨서 군산으로 내려갔다.
군산에는 맛있는 빵집이 하나 있다.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하니 군산에 도착해서 빵집부터 갔다. 많이 먹으면 죽기전에 배탈날까봐 단팥빵 하나만 샀다. 군산의 유명한 관광지도 몇군데 들렸다. 옛 철길마을이 예쁘다고 해서 한번 가봤다. 커플들이 옛날 교련복을 입고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애기가 손을 잡고 철도길을 걸어가고 있다. 흥, 다들 행복한척 하고는, 다들 죽고 싶잖아 사실은. 유명한 카페도 몇군데 들렸다. 유명한 적산가옥도 들렸다. 유명한 절도 들렸다. 스님이 나에게 말을 건다. "반가워요 청년, 여행 왔어요?" "네. 군산 참 예쁘네요." 내 계획을 눈치챈건가? "군산 참 예쁜 동네죠. 시간이 된다면 군산 앞바다로 가봐요. 새만금 방조제를 쭉 따라 걸으면서 바다를 한번 바라보세요.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거에요." 니가 뭘안다고. "안 그래도 바다에 갈려했어요, 감사합니다."
새만금 방조제로 걸어갔다. 내 소망대로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죽을때가 됐다. 내가 죽고싶은 이유는 딱히 없다. 요즘 내 또래들이 많이 죽는다고 하니까 죽어도 큰 문제는 안될것이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가 무척 파랗다.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나는 내일을 생각해본다. 만약 오늘 죽지 않는다면 내일까지는 살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난 내일 아마 자살할것이다. 만약 운이 좋아 내일도 버틴다 치자. 다음주 언젠가 난 자살할것이다. 다음주가 아니면 다음달. 다음달이 아니면 내년. 하루하루가 지나가면 살기 더 힘들어진다. 고민은 많아지고 행복은 점점 없어진다. 그냥 일찍 죽어버리는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선택이다. 진짜 이제 죽어야지. 가방을 열고 밧줄을 꺼낸다. 아, 그런데 바다가 너무 예쁘다. 사진 몇장 찍고 죽어야겠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 몇명이 올려나. 부모님은 그래도 오시겠지. 친구들은 몇명 올려나. 내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날 얼마나 사랑했을까. 바다를 다시 쳐다본다. 사실 난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다. 하지만 내일의 나를 못 믿겠다. 내가 삶의 끈을 언제까지 잡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은 버텨도 내일은 포기할것 같다. 도무지 나를 믿을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한걸까. 살고 싶다. 너무 살고 싶은데 이게 오늘만 드는 감정이 아닐까? 내일까지 살고 싶다. 하지만 내일 죽고싶으면 어떡하지. 살고 싶다. 정말 너무 살고 싶은데, 내가 스스로 죽고싶지 않은데 제발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 있을까. 제발, 제발 살고 싶다. 바다야 혹시 방법이 없을까? 너한테 빠지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오늘도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내년도 그 다음도 살고 싶을 수 있을까. 혹시 너한테 약속을 하면 어떨까. 너한테 맹세를 하면 어떨까. 절대 죽지 않을거라고 너랑 약속하면 어떨까. 그리고 너는 여기서 기다리면서, 내가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는거야.
나는 멋대로 군산의 바다와 약속했다. 다행히 나도 바다도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날 바다가 조금만 덜 찰랑거렸으면 난 그대로 빠졌을거고, 내 또래들처럼 죽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