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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승우 Oct 12. 2024

겨울

어느날 날씨가 추워졌고 나는 서둘러서 겉옷을 챙겼다. 내가 일하는 카페는 호수 안에 있다. 호수는 얼어붙어있고 사람들은 목도리에 뒤덮여있다. 책을 펼친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혹시 영업하나요?" 

"네, 몰론이죠. 어떤걸로 드릴까요."

"음... 그런데 안 추우세요? 하긴 여기 경치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질것 같네요."

"아, 잘 아시네요, 제 마음은 겨울이 아니에요, 제 마음은 굳이 꼽자면 봄이에요. 전 다음주에 갈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고 있어요,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하잖아요. 저는 거기서 맛있는 고등어 회를 먹고 겨울 바다를 구경할거에요. 그리고 비싼 호텔에서 거품목욕도 하고요. 제 여자친구는 무척 착해요. 제가 고등어를 먹자 하면 고등어를 같이 먹어줄꺼고 바다를 가자하면 바다를 같이 가줄꺼고 제가 헤어지자 하면 헤어질꺼에요. 그래서 전 여행을 갔다오면 헤어질려고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아직 제 얘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헤어지면 제 마음은 겨울이 될까요? 제 앞에 펼쳐진 저 소나무들에 눈이 쌓인걸 좀 보세요, 곧 나뭇가지가 부러질것 같아요. 저 얼어붙은 호수 아래에는 몇마리의 오리들이 죽었을까요? 계절은 항상 바뀌어요. 겨울이 오면 봄이 또 오겠죠? 하지만 한 평생 봄일 수는 없는걸까요? 제 마음이 얼어붙고 폭설이 퍼붓는다면 전 무척 슬플것 같아요, 겨울은 무서워요. 하지만 이 봄...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 봄은 사실 봄이 아닐지도 몰라요. 떨어진 벚꽃들을 제가 다시 붙인것은 아닐까요? 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요..."

"날씨가 추워요. 저는 따뜻한 커피가 먹고 싶고요. 추운 겨울이면 사람들은 봄을 꿈꾸죠. 우리 앞에 펼쳐진 저 벚꽃나무들이 모두 올망졸망 흐드러진다면 얼마나 예쁠까요. 호수에는 다시 오리 가족들이 낮잠을 자고 있겠죠. 봄바람은 얼마나 기분 좋게 불까요, 푸른 하늘과 푸른 호수가 벌써 보여요. 하지만 만약 우리 앞에 벚꽃나무의 꽃들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요, 봄바람이 그냥 바람이 된다면요, 더 이상 저희는 봄을 꿈꿀 수 없어요. 그건 참 슬픈 일일꺼에요. 계절에게 안녕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미련없이 다음을 기약해야 해요. 떠나가는 계절을 붙잡으면 안돼요. 겨울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인생은 겨울이 온만큼 봄이 올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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