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승우 Aug 30. 2024

너는 어떤 인형이 되고 싶어?

세상의 모든 인형들에게 바침

너는 어떤 인형이 되고 싶어? 모두의 사랑을 받아서,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입가의 미소가 찢어질것만 같은 그런 인형이 되고싶니? 아니면 목이 축 처지고 먼지가 쌓여서 색깔도 바뀌어버린, 저 서랍장 맨 밑칸의 곰돌이가 되고 싶니?


글쎄요, 그건 제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에요. 전 인형이잖아요. 그런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모두한테 사랑을 받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뜰때마다 오늘이 기대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사랑이란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번 골라봐요, 자신 있으면. 당신이 그걸 고를 수 있을것 같아요? 당신은 사람의 낯짝을 한 인형이에요.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 등을 잘 살펴보아요, 가격표가 뜯겨나간 흔적이 보일껄요? 당신은 1000원 주고 뽑을 수 있는 인형뽑기에서 뽑혔거나, 어디 동네 싸구려 장난감 매장에서 떨이로 줏어온 인형이에요. 처음 몇주간 눈길 몇번 받다가 이내 당신의 고약한 싼티에 그만 버려지고 말았죠. 당신은 길바닥을 구르다 문득 당신의 본성을 잊어버린거에요.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거죠. 어디 한번 해봐요, 당신이 사람이라는걸 한번 보여줘 봐요. 당신이 바뀔 수 있을것 같아요? 사람도 안 바뀌는데 어디 인형이 바뀔것 같아요. 당신은 7000원 짜리 짝퉁 인형이에요. 눈단추는 똑바로 안 꿰매져있고 다리의 실밥은 터져서 세상에 나왔죠. 당신은 세상에 쓸모없는 짝퉁 인형이에요. 그 가소로운 가짜 미소는 이제 그만 지어요.


맞아, 난 짝퉁 인형이었어. 옛날 옛적에 내 등 뒤에는 7000원짜리 가격표가 붙어있었어. 하지만 그걸 떼버린건 나야. 난 터진 실밥 사이로 솜덩어리들을 흘리면서 다짐했어. 더 이상 짝퉁인형으로 살지는 않을거라고. 가격표도 떼고 실밥도 꿰매고 눈단추에 본드도 붙였어. 제법 미소가 자연스러워진줄 알았는데 귀신같이 내 과거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내 본드자국을 알아봤거나 꼬맨 흔적을 알아봤겠지. 하지만 난 그냥 짝퉁 인형은 아니야. 난 적어도 내 머릿속으로는 내 가격표가 7만원도 아니고 70만원도 아니고 7억원이라고 믿는 짝퉁 인형이야. 그런 짝퉁 인형은 세상에 한명도 없을거야. 세상을 더 뒹굴다 보면 내 본드자국까지 사랑해줄 인형을 만날지 몰라. 뭐 어때, 나도 인형인데. 그러니 너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 너는 어떤 인형이 되고 싶어?

이전 03화 나는 헬륨풍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