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니까 사람이다-2
어느 안드로이드가 남긴 비밀 유서
삼십 년 전 그날도 나는 내가 맡은 환경 프로젝트인 우산 고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닳거나 구멍이 난 신발이나 가방, 고장이 나 못 쓰는 펜 등을 수거하여 새것처럼 고쳐서 다시 판다. 정부 지원이 되는 사업이라 돈도 쏠쏠히 들어온다.
사흘 전 폭풍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유난히 고장 난 우산이 많이 들어온 날이었다. 천 개가 넘게 쌓인 우산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있었는데, 그중 군청색 우산 아래서 뭔가 희미한 고양이 소리 같은 게 나기 시작했다. 얼른 쫓으려고 하다가 우산을 들춰보니 그 아래 작은 인간 아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자아이였고, 이름은 ‘유해리’라고 배냇저고리에 수놓아져 있었다.
자연 발생 아기다. 나는 순간, 뇌에서 알 수 없는 전파 자극이 몰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두뇌 세포가 말하고 있었다. ‘잘만 하면 우주국의 감시를 피해 이 아기와 함께 살 수 있다’라고.
* * *
VA의 등장은 그러니까.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그 순간부터였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난자와 정자로 ‘만들어진’ 아기가 그토록 완벽한 환경에서 자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복제품을 만들어 ‘인간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이 언젠가부터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VA의 필요는 어디까지나 ‘원본’ 아이의 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두 죽기 전까지 아이가 사망하지 않는다면 '복제품'인 VA는 그저 그 아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본’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지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껏해야 150년을 사는 ‘원본’이 죽고 나서도 천년, 이천 년, 삼천 년이 흘러갈 동안…
VA는 원칙적으로 가족을 가질 수 없다. 수컷 당나귀와 암컷 말을 교배하여 탄생시킨 노새처럼 생식력을 가질 수 없는 데다가, 법률상 원본과 대체되지 않은 VA는 그 누구와도 동거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도 함께 말동무라도 할 배우자도 없으며, 누군가가 소멸시켜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소멸할 능력도, 그럴 권리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해리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의 사회적 정서표현 능력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해리를 숨겨가며 길렀다. 여차하면 둘러댈 많은 말들을 두뇌 회로에 집적시키면서‥ 그렇게 그날부터 해리는 나와 같은 VA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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