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니까 사람이다-3
어느 안드로이드가 남긴 비밀 유서
햇살이 밝은 어느 날, 내 ‘재생품 가게’로 중국 남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내게 살이 네 개나 부러진 노란 우산을 들이밀었다.
곧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전에 그 우산을 꼭 고쳐서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우산을 고치는 동안, 그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캐나다에 사는 ‘워우칭’씨는 자식인 ‘워우밍’을 중국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는 ‘밍’이 학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날을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밍이 탄 배가 가라앉고, 사백 명이 족히 넘을 탑승객들 중 백여 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밍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는 받지 않았다.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스무 시간 남짓 걸려 그 바닷가로 달려갔다. 밍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그날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미소를 짓고 이렇게 말했다.
“다녀왔어. 정말 즐거웠어.”
밍의 옷은 아주 바짝 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살이 네 개나 부러진 노란 우산이 진흙에 처박혀 있었다. ‘워우밍’이라고 파인 글자가 선명한.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안다. 그리고 내 존재 자체가 그러한 목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해리는 그런 목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유, 기저귀, 공주 드레스, 신발, 인형, 색칠공부…, 나는 해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사주고 먹이고 입히면서 그녀를 키웠다. 그렇게 해리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그 애는 동그란 순진한 눈을 하고서 나에게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엄마… 가짜지?”
나는 순간 푸하하하하! 프로그램된 대로 웃어버렸다. 해리가 드디어 나의 존재를 인식한 것이다! 그래! 가짜다! 난 가짜 엄마! 가짜 인간인 거야!
그러나 해리에겐 넌 진짜야! 넌 진짜 진짜지만 가짜 노릇을 해야 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잘 알고 있네. 그리고 너도 가짜야.”
그때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해리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내일이면 소멸될 테지만 내가 만약 천 년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때 그 말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 전두엽 안에서 굵은 활자체에 느낌표까지 달린 문자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해리를 최대한 빨리, 반드시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심장박동의 경고를 알아차렸다. 해리가 죽거나 내가 소멸되거나, 아니면 둘 다 그렇게 될 확률이 90%로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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