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니까 사람이다-5
어느 안드로이드가 남긴 비밀 유서
“당신을 영아유기 및 아동학대,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합니다.”
우주 치안센터 경찰 세 명이 나를 포위하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신생아였던 해리를 훔쳐서 키우고 인간인 해리에게 VA라고 거짓말을 하여 자아를 분열시켰으며, 심지어 네덜란드인 양부모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혐의가 있음을 고지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해리’ 본인의 입으로부터 나온 정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남겼다.
“당신은 VA이므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VA로서 받게 되는 최고형인 ‘소멸’ 형이 주어졌다. 내일 아홉 시면 나는 이 세상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나는 칠십 세의 완연한 노년의 모습이겠지만 해리를 만났던 그날부터 젊음을 유지하는 생체 호르몬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외모에는 별로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소멸 전날이라는 정보의 인식이 나 같은 VA의 얼굴도 변형시킬 수 있는 걸까? 안면에 주름이 생기면서 일그러짐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도끼로 목이 날아갔던 영국의 메리 여왕과 기요틴으로 단번에 생명이 끊긴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 전날에 느꼈을 기분이 궁금해졌다.
다행히 나는 그들보다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요즘은 인간이든 VA든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단 한 방의 마취 가스로 끝내기 때문이다.
‘소멸실’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창밖으로 이제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해리의 얼굴이 보인다. 판사의 가운을 입고 건물 밖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잠깐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이 반갑다. 아니‥, 반갑다고 느끼도록 프로그램된 건가? 감각이면 몰라도 내가 무슨 감정을 느낄 리가 없잖아?
그런데… 내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액체가 떨어진다. 이럴 땐 눈물을 흘리도록 프로그램된 건가? 그때, 나를 흘깃 보고 지나가던 해리가 소멸실 밖 유리창에서 나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 느껴진다고? 뭘 느껴…?
해리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반갑다는 걸까? 얼굴엔 다섯 살 아이 때 본, 그 미소가 서려 있다. 나를 직접 고소, 고발하여 이렇게 소멸실로 이끌어 놓고? 그렇다. VA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해리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이 지내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그 아이를 네덜란드인 부부에게 보낸 것도, 모두 그 아이를 위해서 했던 최선의 일이었다. 하지만 VA 따위에겐 그 어떤 감정도, 변명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일 뿐…
* * *
“끝났나요?”
“네. ‘소멸’ 시켰습니다.”
“저 유서와 함께 잘 태우세요. 그 네덜란드 부부처럼…, 그녀가 최후의 ‘사람’이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그리고 우리가 모두 VA라는 사실도 말이죠. 끝까지 잘 묻어 두세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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