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니까 사람이다-4
어느 안드로이드가 남긴 비밀 유서
해리가 가짜인 나의 존재를 정확하게 간파한 지 일주일쯤 지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네덜란드인 부부가 신발과 가방을 가지고 내 가게에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그 아이의 장례식에 쓸 물건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아이의 복제 VA를 미처 만들어 두지 못했고, 그래서 더 상심이 커 보였다.
나는 신발을 꿰매고 가방끈을 고쳐주며 해리에 대해 슬쩍 언급했다. ‘원본’이 실종된 ‘복제품’이라고. ‘원본’의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잠시 여기 있는 VA라고. 필요하시면 싼 값에 사시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여전히 슬픔에 젖은 얼굴이었지만,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자 내 기억회로에 남아있는 해리와 함께 있었던 일들의 기억 정보들이 바이러스처럼, 연이어 뜨는 광고 배너처럼 시야 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유를 토하면서도 뒤집기를 하거나, 화장지를 계속 뽑아대거나, 놀이터 정글짐의 최고봉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그때마다 나는 계속 머릿속에서 ‘엑스’ 표식을 눌러 없애버리곤 했다.
해리를 데려간 네덜란드인 부부는 내가 VA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해리의 성장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그 후에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해리의 사진을 보내왔고, 나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멋지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자라던 해리를 보며 기억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시키곤 했다.
억겁 같은 삼십 년이 흐르고, 해리를 보내던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한 사십 대였던 그 네덜란드인 부부도 차례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인은 각각 심장마비와 뇌졸중. 인간들에게 흔한 질병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해리의 사진도 내게 배달되지 않았다. 마지막 업데이트는 해리가 로스쿨을 졸업했던 제 작년에 했다. 해리는 아마도, 하고 싶어 했던 판사나 검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부디 VA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법조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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