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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22. 2024

레위인의 변론-5

은하계 최고의 변호사

# 우주력 1045년, 10월 1일


<사사>

  ᆢ나는 우리 레위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변호사, '치라'를 섭외했다. 그녀는 무려 30대 초반에 지구 최고의 '하발' 로스쿨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개업 후 약 10년 동안 5천 건 이상을 수임했으며, 그녀가 직접 변론하는 사건은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치라의 사무실은 지구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인 알래스카에 위치해 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눈이 많이 오고 엄청 추운 지역이었고, 개썰매를 타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곳인데, 지금은 전형적인 봄가을 날씨가 반복되는, 무엇보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가 발달하여 비지니스하기에 천혜의 환경인 곳이다.


  젊었을 때의 그녀는 무엇보다 샤프한 외모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은회색 바지정장을 갖추어 입고 법정을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배심원들을 향해 날카로운 변론을 펼쳤다. 고대적 지구의 배우 '다니엘 헤니'를 닮은 저음의 매력적인 여성, 그 당시 별명이 '은갈치' 또는 '헤어테일'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      *     *     


 "ᆢ왜 그러셨어요? '사사진'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심드렁한 말투. 배가 나오고 양볼에 불독살이 오른, 앞머리 이마 부분이 하얗게 세고 탈모 증상이 보이는 60대의 할머니에 불과하다. 검정 뿔테 안경 패션은 여전하다. 2~3년 전부터 돈독이 올라 돈 많은 집 자제들이 저지른 강력사건을 변호하다가 갑자기 명성이 쇠락한 덕택에 수임료를 50%나 싸게 해 준 건. . 나쁘지 않다.  

   

"죄목이 '살안방조(안드로이드를 죽이도록 방조한 혐의)' 지만 검사 측이 여론몰이 하면  '살안교사(안드로이드를 죽이도록 교사한 혐의)'도 될 수 있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서진 안드로이드 본체를 직접 분해했다는 사실이죠. 끔찍하지 않았나요? 아무리 기계라도 생체형이라 인간과 그닥 다르지 않았을 텐데?  '사체유기'까지 죄목이 올라가는 건 너무 당연해요."

     

  그녀는 오랜만에 맡은 사건이 짐짓 흥미로웠는지 표정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비아냥대는 말투가 맘에 안 들지만 일단 참기로 한다. 로스쿨 선배가 추천해 주지만 않았어도.

     

"아시다시피, 저도 레위인입니다. 절차나 양형 가능성은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치라님을 소개받은 거고요."     


   치라가 고개를 까딱한다, 별들이 가득한 광활한 우주 공간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던 둥그런 공간벽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ᆢ고 느끼는 순간, 영상이 사람의 얼굴 형태로 바뀐다. 아름다운 금발의 백인 남성ᆢ 안드로이드. 사사진.

     

"!!!!"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아아. 나는 사사진을 좋아했다. 그것도 많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치라는 그제야 누그러진 말투로 돌아왔다.     


"그 안드로이드를 좋아한 건 맞군요. 그걸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 이제 재판에 유리한 증거 하나가 수집되었네요."

     

"난 사사진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 애가 그날, 법과대 홈커밍데이에 그렇게 부정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ᆢ이런 사태까지 오진 않았을 거에요ᆢ" 


 치라가 내게 한번 쓰면 바로 생분해되는 환경친화적 손수건인 '바이탈 행커칩'을 건네 준다. 나는 왠지 눈물을 더 많이 흘리는 모습을 치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받지 않는다.



# 우주력 1042년, 5월 17


<사사>

 애초에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 사사진이 나를 사랑할 거라는 생각 따위를 하고, 기대를 했고, 실망했다는 게 잘못이다. 그 말은 곧, 사사진이 다른 여자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 아이의 '감정'은 아니라는 것이다.ㅡ라고 스스로 위안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노와 배신감의 위력에 휩싸여 자제력을 잃었다ᆢ

     

          *      *     *     


 그날, 홈커밍데이, 그 애를 노리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애는, 금발에 사파이어 처럼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그 누가 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외모를 지녔다. 그 애를 데려오자마자 미남 안드로이드라는 소문이 퍼져버려서, 나는 그 애에게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명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단정한 커터칼 눈썹과 커브를 그리며 위로 뻗은 긴 속눈썹을 보았고 무엇보다도 특히 꾸미지 않으면서 배려하는 그 애의 태도와 말씨에 금세 호감을 느꼈다.     


"사사, 네 안드로이드, 내 거랑 하루만 바꾸지 않을래?"     


법조인 연합모임에서 만난 '플랫'이 사사진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미 로제 와인 두 병이 비워진 테이블 위로 턱을 괸 그녀는 안개가 낀 듯 몽롱한 말투였다.     


"풋ᆢ 무슨 소리를ᆢ 네 '에이(안드로이드)' 플랫진을 나한테 보낼 수 있다고?"     


웃으며 농담처럼 받아쳤지만 나는 저 쪽 문간에 기대어 서서 주인을 응시하고 있는 플랫진의 잘생긴 얼굴을 대놓고 쳐다보았다. 그는 동양계의 남성미를 지닌 안드로이드다. 짙은 흑갈색 머리카락과 잔근육이 있는 팔뚝이 매력적인. 하지만 난 사사진이 훨씬 더 좋다.     


하지만 ᆢ플랫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게임을 제안해 왔다.     


"사사. 넌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이성은?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고 말이야. 말 그대로 '자유의지'가 기계의 뇌에도 생성될 수 있을까?"     


플랫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저 에이들이 그냥 처음에 만들어진 대로, 그저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이성이나 감정을 학습해서 마치 생명체처럼 '성장'할 수 있다면?"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한 건 아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내기를 해보자는 거지! 내가 네 '사사진'을 한번 꼬셔볼게. 혹시 '진'이 내 유혹에 넘어올 가능성도 있잖아? 대신 너는 '플랫진'에 한번 도전해 봐. 어때?"     


뭐하자는 거지? 이 싸가지가...     


"관심 없다면?"     


"사사진이 내게 넘어오지 않으면, 이걸 줄게."


플랫은 목걸이로 제작한. 눈부신 다이아몬드를 내밀었다.     


내 동공이 확장됐다.     


"연금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다이아몬드. 이건 단순히 아름다운 목걸이가 아닌 놀라운 기술의 집약체야. ‘플래닛 스토리즈라는 멋진 이름이 붙었지. 이 안에 모든 우주의, 인류와 안드로이드의 역사가 들어있어. 이건 화성ᆢ 이건 금성ᆢ 그리고 이건 지구ᆢ"

     

플랫은 보석의 알 하나하나를 세며 설명했다.     


"네가 머리 싸매고 검색하는 전 우주의 엄청나게 복잡한 사건의 의뢰인 변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할걸? 심지어 지구력 오천 년 전 판례까지도 1초면 다 찾을 수 있으니까. 어때?"

      

대체 어디서 그런 걸...”     


 '국을'사 일등 프로그래머인 우리 어머니가 작년에 1조 원을 들여 제작한 알파버전이지. 물론 베타버전도 개발 중이지만 말이야. 일단 이것만 있어도 네가 우주연방 판사까지 초고속 승진하는데 무척 한 도움이 될 텐데?"     


플랫은 지 모자란 두뇌를 감추고 약간이나마 지적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이라는 단어를 특히 강조해서 말한다. 정말 재수 없다.           


“근데 넌? 설마 네가 다 쓰고 필요 없는 거 주는 건 아니고?”     


“너도 알다시피 난, 별로 그런 데 관심이 없어. 내 관심은 바로 저런 거지..”     


플랫이 사사진 쪽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린다. 소름끼치는 년.      


어쨌든, 내가 성공하면, 사사진은 영원히 내 거야."     


비열한 스마일리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에 안주로 나온 오징어 숙회와 고추장을 비벼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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